향내음의 보금자리/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방생(放生)하라 !

향내음(蕙巖) 2024. 2. 10. 20:51

방생이란 죽어가는 축생만을 살리라는
뜻이 아니다.
어렵고 힘들게 살아가는 모든 이웃들에게 베풀라는 뜻이다.

가난과 병고액난, 각종 사고와 재난등을
받지 않으려면 방생을 해야 합니다.
  
1862년 충남 예산에서 출생하신 속가의
명(名)은 신 씨이신 혜월 선사님의 이야기입니다.

혜월(慧月) 스님은 13세에 정혜사에 출가 입산하시어 24세 되던 해에 한국 선(禪)풍의 중흥조인 경허 큰스님을 만납니다.

"이 몸도, 허공도 설법이나 청법을 하지 못하는 것, 다만 눈앞의 뚜렷이 밝고 형태가 없으면서도 분명한 이 물건! 이것이 비로소 설법하고 청법하는 것이니라." 하신 법문을 듣고 크게 발심(發心)하여 더욱 용맹정진하더니 7일째 되는 날 아침에 짚신을 만들고 있는 도중에 크게 깨침을 얻었다고 하셨습니다.

  혜월 선사께서는 한국 선승 중에 제1의
  무심도인(無心道人)으로 유명하십니다.
  많은 일화 중에 두 가지를 소개합니다.
  
  혜월 선사께서 울산 미타암에 머무실 때
  한 신도에게 천도재비로 받은 돈 1백 원을
  가지고 제 지낼 물건을 사러 시장에 가는
  길에 마침 길가에서 울고 있는 한 여인을
  만났습니다. 스님은 그냥 지나치지 못해
  울고 있는 여인에게 다가가 울고 있는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여인이 흐느끼면서 말했습니다.

"남에게 80원을 빚을 졌는데 날마다 빚을
  갚아라고 독촉이 얼마나 심한지 견딜 수가
  없어 집에 들어가기가 무서워서 울음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흐흐흑~"

  여인의 그 말에 스님은 두말없이 80원을
  여인에게 건네주며 다시 물었습니다.

"그래, 그 빚을 갚으면 당장 아이들 밥 지어
  줄 쌀은 있는가?"

  여인은 고개를 저으며 울먹였습니다.
  스님은 또다시 딱한 처지를 알고 그나마
  가지고 있던 나머지 20원을 냉큼 내주고
  말았습니다.
  한편 절에서는 스님께서 제 지낼 물건을
  사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늦게서야 빈털터리로 돌아오신 스님을
  보고 왜 장을 보지 않고 오셨냐고 묻자
  스님이 태연하게 말했습니다.

"기가 막히게 제를 지내고 오는 길이다.
  부처님께 지내는 것이나 불쌍한 사람에게
  제를 지내는 것이나 제 지내는 것은 마찬
  가지 아니겠는가."

  그 말씀에 제주가 그 말을 듣고 빙긋이
  웃으며 다시 제 지낼 돈 1백 원을 드리며
  제를 잘 지냈다고 합니다.

  또 하나의 이야기는 스님에게 어느 신도가
  여름철에 깨끗한 모시 두루마기를 지어서
  드린 일이 있었습니다.
  스님께서 그 모시 두루마기를 입으시고
  시장에 가다가 아이들이 논에 미꾸라지를
  잡아가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시고
  스님은 아이들을 불렀습니다.

"얘들아! 그 미꾸라지를 나에게 팔아라."

"싫어요!"

"녀석아! 스님이 팔아라 하면 팔아야
  하는 게야."

"싫다니까요, 안 팔아요."

  이렇게 해서 스님과 아이들 사이에는
  팔아라느니 안 판다느니, 하며 실랑이가
  벌어졌습니다. 그 와중에 스님의 깨끗한
  모시 두루마기는 흙 투성이가 되었습니다
  스님은 안 되겠다 싶어 아이들을 데리고
  지서(파출소)에 까지 갔습니다.
  지서의 순사(경찰)는 혜월 스님이 유명한
  무심도인이라는 것을 익히 소문을 들어서
  진작부터 알고 있었기에 아이들을 달래어
  미꾸라지를 스님에게 팔도록 했습니다.

  스님은 자신의 모시 두루마기가 버린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미꾸라지를 놓아주면서
  빙긋이 웃으셨다고 합니다.

  죽어가는 생명 · 가난하게 살아가는 사람
  들에게 희망을 주는 방생(放生)은 반드시
  해야 합니다.
  동물을 학대하고 죽이는 것을 예사롭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렵고 힘들게 살아가는 불쌍한 사람들을
  본체만체 지나치고 도움을 청해도 거들떠
  보지도 않는 몰지각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다음 세상에 인과(因果)의 법칙에 따라서
  자신이 했던 행동의 몇 백배 · 몇 천 배의
  값을 치르게 될 것입니다.
  
  유난히도 인색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아무리 좋은 경전의
  가르침이나, 아무리 가슴에 와닿는 법문
  이나, 아무리 좋은 기도라고 해도 관심이
  없습니다. 특히 1년에 한두 번 절에 온다
  거나, 그냥 절만 왔다 갔다 하는 신심 없는
  사람들은 부처님 진리의 가르침에는 관심
  밖이기 때문에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조금이라도 알려고 하는 마음만 있으면
  조금씩 희망이라도 있을 진데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이러한 사람들 대부분이
  돈 걱정 없이 부자로 살거나,
  부자로는 살지는 못해도 별 걱정 없이 산
  다거나, 반대로 가난하게  산다거나, 하는
  사람들은 자신들 위주로만 살아갑니다.

  이러한 사람들 중에는 가정內 우환이나
  지병이나 원인 모를 병으로 고생하는 사람
  들이 있습니다. 병원에 가도 잘 고치지 못
  하거나, 병 명도 없이 아픈 사람들도 있습
  니다. 또는 부모는 문제가 없다 해도 자녀
  들이 문제가 있는 가정도 있습니다.
  걱정만 할 뿐, 어떻게 해결할 생각은 없고
  그러려니 하고 살아가는 부모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믿지 못하는 마음, 믿음이 없는 마음이 강
  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그러한 와중에서도
  그저 좋은 약, 좋은 음식, 건강에 좋다 하는
  것은 다 먹으려 하고, 줄기고 놀기를 좋아
  하는 것에는 빠지지 않습니다.
  좋은 음식 · 좋은 약 · 좋아하는 것을 줄기
  면서 살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업장소멸하면서 살자는 것입니다.
  
  업장소멸을 어떻게 합니까?
  인색하지 말고 베풀고 사십시오.
  베푸는 데는 적이 없다고 했잖습니까?
  자신에게 찾아든 그 모든 병은 업장에서
  찾아든 것입니다. 업장소멸하려고 막상
  베풀려고 하면 아까워서! 아깝다는 마음
  부터 납니다.
  그래서 못합니다.
  그래서 병은 낫질 않습니다.
  죽어도 못 놓습니다. 죽어서도 남겨 놓은
  돈 때문에 "내 돈! 내 돈!" 합니다.

  이렇다 보니 마음 다스리는 공부와 기도
  에는 관심이 없고 요행을 바라는 마음이
  더 많다 보니 용맹 정진할 마음을 낼 수가
  없습니다.
  이 판 사판으로 이래 죽으니 저래 죽으나
  죽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한번 해보자고
  마음 한번 굳게 먹는다면 못해 낼 일들이
  어디 있겠습니까? 사람으로 태어나 한번
  죽지 두 번 죽겠냐는 큰 마음을 낼 수만 있
  다면 못해 낼 일이 뭐 있겠냐는 것입니다.
  
  마음하나 턱~ 하니 비워서 해결해 봅시다.
  세상에는 <내 끼> 없습니다.
  죽을 때,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한다는 뜻
  입니다. 통 크게 한번 살아 보십시오.
  쫀쫀하게 망설이다 보면 해결될 일 하나도
  없습니다.

  어느 80세가 훌쩍 넘은 노 보살님이 병고
  액난으로 항시 고생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순간 깨침이 와서 쥐고 있던 전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고 나니, 그 아프셨던 몸이
  가뿐하고 마음이 편안지드니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하고 이름 석자 남기고 잘~
  떠나셨다는 이야기도 있지 않습니까?

  무심도인(無心道人)으로 삶을 영위하신
  혜월 선사께서는 1936년 산에 올라가서
  솔방울을 따 가지고 내려오시다가 그대로
  서서 열반하셨는데 그때 혜월 큰 스님의
  나이 76세였습니다. 감기 한번 들지 않고
  건강하게 사시다가 열반하셨습니다.
  혜월 선사께서 가르친 28분 제자 모두가
  구한말 한국 불교에 선풍을 널리 떨치신
  분들이시고, 그 스승의 그 제자들이라,
  큰 스님과 같이 보시바라밀을 실천하셨
  다고 합니다.

  잘 죽는 사람이 천상이나 극락으로 가는
  법을 압니다.

  蕙巖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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