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내음의 보금자리/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좌탈입망(坐脫立亡)이란?

향내음(蕙巖) 2024. 4. 28. 19:08


깨달음이 곧 좌탈입망(坐脫立亡) 임을  알아야 한다.

오랫동안 참선 수행을 한 스님이 앉은 자세(坐脫:좌탈)나 선 자세(立亡:입망)로 열반(涅槃) 하는 것을 말한다.

불교에서는 죽음을 미혹(迷惑)과 집착(執着)을 끊고 일체의 속박에서 해탈(解脫)한 최고의 경지인 열반(涅槃)으로 본다.

곧 죽음은 삶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번뇌(煩惱)가 사라지는 적멸(寂滅)의 순간인 동시에 법신(法身)이 탄생하는 순간이기 때문에 예부터 선사나 고승들은 죽음을 슬퍼하기보다는 오히려 기뻐하였다.

이 때문에 찾아오는 죽음의 순간을 맞아들일 때도 일반인들처럼 누워 죽는 경우, 자신의 몸을 불태워 소신공양(燒身供養)하거나, 앉거나(坐脫)  선 채(立亡)로 죽는 경우 등 죽음의 형식도 다양하였다.

이 가운데 앉거나 선 채로 열반하는 것이 바로 좌탈입망(坐脫立亡)이다.

좌탈입망은 법력(法力)이 최고로 높은 고승들이 죽을 때 택하는 방법으로, 죽음마저도 마음대로 다룬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한국의  고승들 가운데서도 밧줄을 붙잡고 화두를 외우며 열반한 조계종 초대 종정 효봉(曉峰), 혜수선사는 앉은 상태에서 찻잔을 잡고 열반하였으며  그 외에 오대산 상원사의 한암(寒巖), 백양사의 만암(曼庵), 순천 송광사의 초대 방장 구산(九山), 조계종 5대 종정을 지낸 백양사의 서옹(西翁) 스님 등이 모두 좌탈입망하였다.

좌탈입망은 오랜 수행으로 인한  습관과 깨달음의 결과이다  그것이 행(行)으로 옮겨진 열반이 좌탈입망이다

깨달음이란 사상심(四相心)과  상심(相心)을  벗어난 걸림 없는 청정 본성(本性)에 듦이며, 깨달은 성자는  만물에 존재하는 에너지를 필요시에 끌어들이고 모으고 사용하고 공유하고 이동시키는 능력을 갖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죽음의 순간을 물리적으로 알아보면 일체(一切)의 생명체(生命體)가 가지고 있는 에너지가 완전(完全) 히 고갈(枯渴)된 순간(瞬間)  호흡(呼吸)이 끊어지며 중단되는 것이  바로 죽음이고 임종(臨終)인 것이다

또 병(病)으로 죽는 것은 병원균(病原菌)이 체내(體內)의 에너지를 흡수(吸收)해 버려 에너지가 고갈(枯渴)되어 죽는 것이며, 자연사(自然死) 역시 체내(體內)에 축적(縮積)되어 활동(活動)을 하게 하는 생체(生體) 에너지가 고갈(枯渴)되어  호흡(呼吸)을 중단하여 죽는 것이다.

어떤 죽음이든 간에 축적(縮積)된 생체(生體) 에너지가 고갈(枯渴)되어 죽는다는  공통점(共通點) 있다

이는 중생의 죽음이지마는  깨달음에 도달한 성자는 만물의 원융일성(圓融一性)에  들었으므로 인체 내부의 에너지의 대소(大小)에 무관하게 체내의  모든 에너지가 고갈했다 하더라도 우주의 에너지를 받아들여 본인의 것으로 만들 수 있으며 본인의 의지대로 에너지를 조정할 수 있으며 열반의 시간도 조절할 수 있다  

한암선사(漢巖禪師)께서도 열반(涅槃) 하기 며칠 전부터 일체의  곡기(穀氣:곡식穀食으로 만든 음식飮食)를  끊으시고  맹물만 드시며 인체의 에너지가 고갈되어 갔지만 불佛의 힘으로 깨달음의 경지로 열반의 시간을 의지대로 조정하였다

또한 괴각승 혜수선사는 40대 초반에 열반하셨는데, 표충사 뒷산 사자평을 거닐며  젊은 선승들에게 모름지기 선승이라면  좌탈입망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는데 표충사 객실에 도착하여 차를 마시며 좌담 중에 한 젊은 선승이 스님은 그럼 좌탈입망할 수 있습니까? 하고 질문했는데  그 길로 혜수선사께서는  찻잔을 손에 들고 열반하셨다

이런 선사의 열반은  인체 내의 에너지 고갈 때문에 열반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하며, 한순간 일체를 적멸(寂滅)하여
모든 것을 지(止)에 머물 계 하여 생명의 숨결마저도 정지시키는 깨달음 속이다.

이런 좌탈입망은 한평생 선승으로서 매일 습관처럼  결가부좌(結跏趺坐)를 하여
선 수행하지 않으면 결코 깨달음에 도달하지 못한다

따라서 깨달음 속에  좌탈입망 (坐脫立亡)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