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내음의 보금자리/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道義之交

향내음(蕙巖) 2024. 9. 17. 23:42


시정잡배의 사귐은 이익으로써 하고, 얼굴의 사귐은 아첨으로 하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사이일지라도 세 번만 거듭 부탁하면 틈이 벌어지지 않는 사람이 없고, 아무리 오래 묵은 원한이 있더라도 세 번만 거듭 선물하면 친절해지지 않을 사람이 없다.

그러기에 이익으로서 사귀는 것은 계속되기 어렵고, 아첨으로써 사귀는 것도 오래가지는 않는 것이다.

대체로 커다란 사귐은 얼굴빛에 있지 않고, 아주 가까운 벗은 친절이 필요하지 않은 법이다.

오로지 마음으로 사귀면 덕으로 벗할지니, 이게 바로 '도의(道義)의 사귐'이야.

그러면 위로는 천 년 전의 사람을 벗하더라도 멀지 않을 것이며, 만 리 밖의 떨어져 있더라도 소외되지 않게 된다.

예덕선생 전(穢德先生傳)      박지원

엄행수는 마을 안의 천한 사람으로서 상일 하는 하층의 처지에 있는 사람이다.

그의 집이란 흙으로 쌓고 짚으로 덮은 것인데 거기에 뚫어 놓은 구멍이 곧 드나드는 문이다.

서리가 내리는 늦가을이건 찬 얼음이 깔리는 동짓달이건 갖가지 거름을 모아간다.

거름을 가져다가 가꾸면 야채들은 싱싱하게 자란다.

하는 일은 천하게 보이다 그가 해 놓는 일은 보람 있고 귀중하다.

선귤자는 학덕이 높은 문인으로 세상에 이름 있는 양반들이 사귀고 싶어 하는데도 이들을 상대하지 않고 천한 사람인 엄행수를 선생으로 부르며 사귀려고 한다.

이를 마땅치 않게 여긴 제자가 하루는 그 까닭을 스승에게 물었다.

선귤자는 웃으면서 대답하기를 "벗을 이 (利)로써 사귀면 오래가지 못한다. 마음과 덕으로써 사귀는 것이 "도의지교"인데, 엄행수는 천한 일을 싫어하지 않고 가난하면서도 원망하지 않는 훌륭한 태도가 가히 군자지도인즉, 그를 예덕선생이라 높인다."라고 하였다.

연암을 이 작품을 통해 양반들의 놀고먹는 유한적 생활에 비판적 입장을 견지하면서 직접 생산 활동에  참여하는 하류층의 근로자 가운데서 새로운 인간형을 찾고, 참된 선비 선귤자와의 우정을 그려내고 있다.

"인생을 바르게 살고 슬기롭고 신중한 한 벗을 사귀고자 해서 찾거든 그대는 모든 어려움을 무릅쓰고 기쁘게 그리고 성의 있게 그와 사귀고 가야 한다." 법구경에서

참다운 벗과 인생길을 동행함은 복중에서도 상복입니다.

아함경에 이르길 '우리가 참다운 벗을
사귀고 선한 벗들과 함께 있다는 것은
도의 전부를 이룬 것이다'라고 합니다.

혹여 친구를 대할 때 사회적 신분으로
측량하고, 재물의 다과로 평가하며,
이익을 따라가지는 않은지요?

눈비가 오면 우산이 되어주고, 바람이
불면 바람막이가 되어주며 함께 인생길을 걸어가는 진정한 친구로 남겨져야 할 것입니다.....

팔월 한가위 달 맞이는 하셨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