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내음의 보금자리/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깨어 있다는 것의 의미

향내음(蕙巖) 2012. 12. 3. 15:14



卍--卍
        여러분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다고 할 때 그 일에 대해 가장 잘 알 수 있을 때가 언제인가요. 그 순간인가요 아니면 그 일이 끝나고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난 후에야 그때 내가 이랬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드나요? 당사자일 때 잘 처리 하나요 아니면 제 3자일 때 더 잘 처리하나요. 현실에서는 어떤 일이 끝나고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야 그 일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게 되고 또 제3자가 일을 더
        잘 처리합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조금만 자세히 살펴보면 모순이 있음을
        알 수 있어요. 사실은 일이 일어나는 그 순간에 있을 때 가장 잘 알 수
        있어야 되잖아요. 시간이 한참 지난 뒤면 오히려 잊어버려 잘 모르는 부분이 많을 텐데 왜 시간이 좀 경과한 뒤에야 그 순간보다 더 잘 알게 됩니까? 또 왜 그 일을 당하는 당사자가 아닌 제 3자가 됐을 때 더 잘
        알 수 있습니까 잘 따져 보면 맞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현실에서는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은 현재에 깨어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즉 어떤 상황에 집착하거나 흥분해서 그때는 그 상황이 제대로
        안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참 시간이 지난 뒤에 그 흥분이 가라앉고 나면 그 당시에는 제대로 안 보이던 것이 보이게 되는 것이지요. 이렇게 우리는 자기 생각에 사로잡히면 객관적 현실이 안 보입니다 그러니까 자신의 주관적인 생각에 사로잡혀서 주장을 하거나 일
        처리를 하면 나중에 부작용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지요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갈등 관계에 있다고 합시다. 이럴 때 시어머니가 며느리 친구를 만나서 그 갈등에 대해 얘기할
        기회가 있습니까? 없지요? 주로 자기 친구인 시어머니들끼리
        모여서 얘기를 합니다. 며느리도 마찬가지지요 며느리는 자신과
        같은 경험을 가진 사람들의 얘기를 듣지요. 그렇게 되니 자신의
        생각이 옳다는 것이 다른 사람의 동조까지 있게 되니 더욱 확신을
        하게 되지요 이런 상황은 한 가족에서뿐만 아니라 나라에서도 일어납니다. 오늘날 우리가 고구려 역사나 독도 문제 등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한국 사람들의 말만 듣고 중국 사람은 중국 사람들의 말만 듣고 일본 사람은 일본 사람들 말만 듣게 됩니다. 그래서 객관적인 판단이 나올 수 없습니다. 세미나나 토론을 할 때도 입장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세미나를 하기 때문에 비슷비슷한 얘기만 계속 나옵니다. 그러니까 자신들의 생각만 자꾸 객환 화하게 되는 거예요 다시
        말해서 고집이 세어집니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온 동네 사람들이 다 그렇게 생각한다고 여기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내 생각이 옳다는 고집이 더 강해지고 다른 사람의
        다른 생각을 들으려고 하지 않게 됩니다. 이렇기 때문에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자기 생각을 내려놓으라고 하는 겁니다. 내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생각은 하지 말라고 해도 저절로 일어납니다. 이렇게 일어나지만 이것이 옳다고 고집은 하지 마라 다른 사람의 얘기가 틀렸다고 단정 짓지 말라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대개 내 생각은 다 옳은 것 같고 상대가 얘기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잖아요. 남편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변명하려면 일리 있게 변명해야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지요 그러니까 들을 때 듣긴 듣지만 안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죠? 건성으로 듣는단 말 이예요 너는 지껄여라……. 또 시작이구나.……. 장기나 바둑을 둘 때도 그렇습니다. 옆에서 훈수하는 사람이 더 잘 봐요 당사자는 이기겠다는 것에 집착하기 때문에 오히려 안 보이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지요 사마귀가 매미를 잡으려고 거기에만 집중해서 겨누고 있는데 바로 그 뒤에는 새가 사마귀를 잡으려 겨누고 있고 또 그 새 뒤에는 새를 노리는 포수가 총을 겨누고 있고 또 호랑이는 그 포수를 잡으려고 주시하는 형국과 같습니다. 저마다 등 뒤에서 자기를 겨누고 있는 것은 못 봅니다. 자기가 잡으려고 하는 것만 보이지요 이게 바로 현실에 깨어 있지 못하는 것입니다 한 쪽에 쏠려 있습니다. 사로잡힘에서 벗어나라는 것을 다른 말로 현재에 깨어 있으라고
        하는 겁니다. 여기서 현재에 깨어있는 것은 두 가지를 말합니다. 하나는 사물을 객관적으로 보라는 것과 다른 하나는 현재 내 마음에 일어나는 상태에 대해 깨어 있으라는
        것입니다 지금 화가 일어나면 화가 일어나는 그 상태에 욕심이 일어나면 욕심이 일어나는 그 상태에 깨어있으라는
        것입니다 내면에서 일어나는 그 현재에 깨어 있으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현재에 깨어 있으라고 하면 단순히 현실에 깨어 있으라는
        말로만 이해를 합니다. 현재에 깨어 있다는 것은 경계에 부딪쳐서 일어나는 현재의
        자기 마음에 깨어 있는 것으로 이해하는 게 좋습니다. 자기 상태에 깨어 있어야 합니다. 자기 상태에 깨어 있으면 사로잡히지 않게 됩니다. 상황이 일어나긴 일어나지만 거기에 사로잡히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바깥의 객관 현실이 더 잘 보이게 되나요. 이것이 있는 그대로 보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