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내음의 보금자리/필요한 생활의지혜 및 염불

[삼 보 통 청] 三 寶 通 請

향내음(蕙巖) 2012. 7. 26. 14:44

[삼 보 통 청] 三 寶 通 請




삼보통청은 모든 삼보님을 널리 청하여 공양 올리고 축원하는 의식으로 제불통청이라고도 한다.

불공의 의의

불공은 불·법·승 삼보(三寶)에 공경하는 마음으로 향·차·꽃·음식물 등을 올리는 의식을 말한다. 자비심으로 중생을 보살펴주시는 부처님께 공양 올리고 그 공덕으로 불·보살님의 가피를 입어 소원과 지혜를 성취하고 결국에는 깨달음에 이르려는 것이다.
부처님 재세시에는 살아 계신 부처님을 위주로 한 삼보에 대한 공양이 이루어졌으나, 부처님 열반 이후 교리가 확대되는 대승불교가 일어나 부처님과 여러 보살님께 올리는 공양의식으로 확장되었다.
불교의식은 다른 종교와는 달리, 제철에 나오는 과일이나 나물·떡 등을 올리는 음식 문화가 매우 발달되었다.
지극한 마음으로 올리는 삼보에 대한 공양은 모든 이에게 이익을 주고 업연(業緣)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한다. 또한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은 모든 중생이 괴로움과 근심에서 풀려나와 행복과 안락에 들게 하는 복전이 된다. 그러므로 공양을 베푼 자는 복덕이 늘어나게 되어 스스로도 이롭고 남도 이롭게 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불공의 준비

불공을 올리기 위해서는 다음의 몇 가지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첫째, 불·보살님께 지성으로 귀의한다.
둘째, 불·보살님께 간절한 마음으로 예경하고 참회한다.
셋째, 목욕재계하고 공양물을 정성껏 준비해서 불전에 올린다. 공양물이란 향 초 차 꽃 공양미 과일 등을 말한다.
넷째, 불·보살님의 명호를 간절히 생각하고 부르며 소원을 빌고 꼭 성취될 것이라고 믿는다.
불공은 먼저 보례진언을 읽고 천수경과 네 가지 진언을 외우고 난 다음 절차대로 하면 된다.

원문

{보례진언}普禮眞言
{아금일신중}我今一身中 {즉현무진신}卽現無盡身 {변재삼보전}遍在三寶前 {일일무수례}一一無數禮
「옴 바아라믹」 (3번)

역문

보례진언(널리 절하는 진언)
제가 이제 한 몸에서 다함없는 몸을 내어
두루 계신 삼보님께 일일이 절합니다.
「옴 바아라믹」

해설

보례진언은 모든 부처님께 예경하는 진언이다. 일반적으로, 불공을 올리는 정성이 부처님께 전달될 수 있도록 삼보를 찬탄하는 보례진언으로 불공을 시작한다.
진언은 만트라(mantra)라 하여 주문·주·신주·밀주·밀언으로 번역하고 ‘진실하여 거짓이 없는 말’이란 뜻이다. 진언을 ‘다라니’라고도 하는데, 진언은 비교적 단구로 되어 있고 다라니는 장구로 되어 있다. 다라니는 불경의 내용을 마음에 새겨 잊지 않으려는 목적에서 만들어졌으며 총지(總持)라고 번역한다.
한역이나 훈민정음에서는 띄어쓰기가 없던 진언이 범패나 범음의 영향을 받아 3~음절로 끊어 읽는 어절을 형성되었다.
진언을 염송하면 악한 마음이 생기는 것을 막고 지혜를 얻을 수 있으며 깨달음을 열고 세속적인 소원을 성취한다고 한다.
삼보(三寶)란 범어 뜨리라뜨나(triratna) 또는 라뜨나 뜨라야(ratna-traya)의 번역으로 우주의 진리와 인생의 참다운 모습을 깨닫고, 다른 이를 가리쳐 깨닫게 하시는 거룩하신 부처님[佛]과 부처님의 가르침[法]과 그리고 교법대로 수행하는 부처님의 제자 집단[僧]을 세상에 더 없이 귀중한 보배라는 의미이다.

보례진언은 ‘옴, 無邊到, 我’로 ‘제가 끝없이 절합니다’라는 의미라고 보여진다.

원문

○천수경 독송

{정삼업진언}淨三業眞言
「옴 사바바바 수다 살바 달마 사바바바 수도 함」

{개단진언}開壇眞言
「옴 바아라 놔로 다가 다야 삼마야 바라 베사야 훔」

{건단진언}建壇眞言
「옴 난다 난다 나지 나지 난다 바리 스바하」

{정법계진언}淨法界眞言
라자색선백(羅字色鮮白) 공점이엄지(空點以嚴之) 여피계명주(如彼계明珠) 치지어정상(置之於頂上)
{진언동법계}眞言同法界 {무량중죄제}無量衆罪除 {일체촉예처}一切觸穢處 {당가차자문}當加此字門
「나모 사만다 못다남 람」

역문

정삼업진언(삼업을 맑히는 진언)
「옴 사바바바 수다 살바 달마 사바바바 수도 함」

개단진언(단을 여는 진언)
「옴 바아라 놔로 다가 다야 삼마야 바라 베사야 훔」

건단진언(단을 세우는 진언)
「옴 난다 난다 나지 나지 난다 바리 스바하」

정법계진언(법계를 맑히는 진언)
곱고 흰 라자에 공점으로 장엄하니
계명주와 같아라, 정상에 놓은 그것
진언(염송) 법계 같아져서 무량중죄 제거 되리
더러운 곳 만나면 이 진언을 가지하라.
「나모 사만다 못다남 람」

해설

여기에서 정삼업이란 중생들의 모든 업, 즉 몸과 말과 생각으로 짓는 세 가지 업을 맑히는 것을 말한다.

부처님은 고결한 수행을 통하여 번뇌를 끊고 청정한 심신으로 대각을 성취하신 분이다. 그런 분에게 공양을 올리기 위해서는 불공하는 자신도 삼업을 맑혀야만 부처님께서 공양을 받아 감응하실 수가 있다. 그러므로 천수경 독송을 통해서 삼업을 깨끗하게 참회하고 발원하였으나, 아직도 부족하기에 다시 경건함을 더하는 의미에서 정삼업진언을 외우는 것이다.

정삼업진언의 뜻을 살펴보면 ‘옴, 自性, 淸淨, 모든 法, 自性, 淸淨’이라는 의미이다. 우리말로는 ‘아, 자성 청정의 일체법이여, 나의 자성청정이여’로 의역할 수 있다.

개단진언은 단을 여는 데 필요한 진언이다. 금강계에 이르는 문을 연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불공을 드리려면 마히 공양차릴 단을 마련하고, 공양을 받으시는 대상께서 받아 잡수실 수 있도록 단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다.

이 진언은 ‘옴, 금강, 人, 持趣[북], 그것으로써 삼매, 피안, 경계, 훔’이라는 뜻으로 ‘아, 금강의 우주적 영이시여, 큰 북 그것으로써 (마음의) 평정함을 위해, 피안의 경계여, 제거 되어지이다’로 의역할 수 있다.

건단진언은 단을 건립하는 진언으로 작단진언으로도 알려져 있다. 태장계 만다라의 결계를 행할 때 사용된다.

이 건단진언은 ‘옴, 福, 福, 福받은 자, 福받은 자, 福, 持者, 스와하’와 같은 뜻으로 ‘아, (기쁨의) (남녀) 신들이시여, 기쁨이여(신이시여), (기쁨을) 이끄는 자시여, 영광이 있기를’이라는 의미라고 보여진다.

건단진언을 독송한 뒤 다시 법계를 맑히는 정법계진언을 외운다. 천수경 본문에서는 ‘옴 람’을 외웠는데 여기서는 찬탄게송을 먼저 독송한다. 이 게송은 ‘라’자 위에 공점을 그려 넣어 ‘람’자가 되는 범어의 아름다움을 말하면서 진언의 가피력을 설명한다. 즉 ‘진언은 법계와 같아 무량한 모든 죄업을 제거하여 준다. 그러므로 일체 더러운 경계를 만나면 이 진언을 외우라’이다.

진언의 게송으로 정법계진언을 강조하는 것은 불공 올리기에 앞서 법계를 맑히듯이 자신의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는 일이 중요함을 의미한다. 그래야만 부처님의 진정한 가피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법계진언은 ‘편만하신 제불께 귀의합니다. 람(불꽃)’이라고 새길 수 있다.

불꽃을 의미하는 ‘람’(lam)자는 지수화풍공(地水火風空)의 5대 종자(種子)인 아바라하카의 가운데인 화(火)인 라자문에다 공한 이치를 나타내는 공점(아누스하라)를 첨가한 것이다.

종자란 곡류의 씨앗을 말하는데, 곡류의 싹이 종자에서 나오듯 물과 심[物心]의 모든 존재 현상을 발생하게 하는 씨앗이라는 의미다. 밀교에서 불·보살 등 제존을 표상하는 범자를 종자라고 한다. 가령 석가모니 종자심 진언은 박(bhah), 금강계아미타여래의 종자는 흐릭(hrih) 등이다.

법계(法界)란 범어 다르마다투(dharmadhatu)로 진리의 세계, 의식의 대상인 모든 사물을 의미하며, 진여(眞如) 또는 일체 모든 법을 말한다.

물론 불공 올리기 위해 절에 가는 사람은 몸을 청결히 하고 재계를 가져서 정신을 깨끗이 해야 한다.

어느 신심이 돈독한 거사님댁은, 절에 불공드리러 가기 전날 온 가족이 목욕재계하고 부처님께 마지지어 올릴 쌀을 부셔지지 않은 온전한 것만 고른다고 한다.

이와 같이 정성을 다하여 세심한 곳에 마음을 쓰는 가운데 공덕은 이미 이루어진다. 이렇게 참되고 거짓없는 마음으로 불공을 드려야만 소원을 성취할 수 있는 것이다.

원문

○{거불}擧佛
{나무 불타부중 광림법회}南無 佛陀部衆 光臨法會 (1배)
{나무 달마부중 광림법회}南無 達摩部衆 光臨法會 (1배)
{나무 승가부중 광림법회}南無 僧伽部衆 光臨法會 (1배)
{보소청진언}普召請眞言 「나모 보보제리 가리다리 다타아다야」 (3번)

○{유치}由致
{앙유}仰惟 {삼보대성자}三寶大聖者 {종진정계}從眞淨界 {흥대비운}興大悲雲 {비신현신}非身現身 {포신운어}布身雲於 {삼천세계}三千世界 {무법설법}無法說法 {쇄법우어팔만진로}灑法雨於八萬塵勞 {개종종방편지문}開種種方便之門 {도망망사계지중}導茫茫沙界之衆 {유구개수}有求皆遂 {여공곡지전성}如空谷之傳聲 {무원부종}無願不從 {약징담지인월}若澄潭之印月

{시이}是以 {사바세계}娑婆世界 {차사천하}此四天下 {남섬부주}南贍部洲 {해동}海東 {대한민국}大韓民國 {시}市({도}道) {산}山 {사}寺 {청정수월도량}淸淨水月道場 {원아금차}願我今此 {지극지정성}至極之精誠 {공양발원재자}供養發願齋者 {시}市 {구}區 {동}洞 {번지}番地 {거주}居住 {건명}乾命 {보체}保體 {곤명}坤命 {보체}保體 {이차발원공덕}以此發願功德 {지원}之願 {이금월금일}以今月今日 {건설법연}虔設法筵 {정찬공양}淨饌供養 {제망중중}帝網重重 {무진삼보자존}無盡三寶慈尊 {훈근작법}薰懃作法 {앙기 묘원자}仰祈 妙援者 {우복이}右伏以 {설명향}名香{이예청}以禮請 {정옥립}呈玉粒{이수재}而修齋 {재체수미}財體雖微 {건성가민}虔誠可愍 {기회자감}冀回慈鑑 {곡조미성}曲照微誠 {근병일심}謹秉一心 {선진삼청}先陳三請

역문

○거불(불법승 삼보에 귀의하며 광림을 청함)
모든 부처님께 귀의하오니 법회에 광림하옵소서.
모든 법보님께 귀의하오니 법회에 광림하옵소서.
모든 스님네께 귀의하오니 법회에 광림하옵소서.

보소청진언(널리 부르는 진언)
「나모 보보제리 가리다리 다타아다야」

○유치(연유를 아룀)
우러러 생각하옵건대, 진여 청정계에서 자비의 구름으로 피어나신 삼보자존은, 나투신 몸이 없건만 신운(몸의 구름)으로 삼천대천세계를 덮으시고, 설하시는 법이 없건만 법의 비로 팔만사천 번뇌를 씻으시며, 갖가지 방편 문을 열어 끝없는 고해의 중생을 이끄시니, 빈 골짝에 메아리가 울려퍼지듯 모든 것을 소원대로 이루게 하고, 맑은 못에 달 그림자 비취듯 이뤄지지 않는 원이 없사옵니다.

그러므로 사바세계 차사천하 남섬부주 해동 대한민국 시(도) 산 사 청정한 도량에서 오늘 지극한 정성으로 불공하며 발원하는 재자 거주 보체 등이 이 인연공덕으로 소원을 이루고자, 금월 금일 삼가 법석을 마련하고, 조촐한 공양구를 제망중중의 다함없는 삼보자존께 공양하나이다. 정성껏 법요를 행하며, 신묘한 가피를 바라옵는 재자들은 삼가 싱그러운 향을 살아 예로써 청하오며, 옥씨같은 공양구로 공양하고 재를 마련하였으니, 드리는 공양구는 미미하오나 정성은 애절하오니, 지혜 광명 돌리시어 간절한 정성을 굽어비춰 주옵소서. 삼가 일심으로 먼저 삼청 하옵니다.

진행

천수경 독경이 끝나면 목탁에 맞춰 의식을 주재하는 법주와 바라지가 함께 거불을 거불성으로 진행하는데, ‘광림법회’에서 절을 세 번 한다.

거불을 마친 법주는 요령을 세 번 울리고 보소청진언 제목을 외우며 합장정례하고 일어서면서 왼손은 심장에 대고 심장을 향하여 요령을 흔들면서 진언을 세 번 한다.

진언을 하고 나서 법주는 합장하고 유치성으로 유치를 진행하는데, 유치가 끝나는 ‘선진삼청’ 부분에서 요령을 잡고 세 번 울려주면 된다. 법주가 유치를 하는 동안 바라지는 목탁을 내려 삼배하고, 이때 재자들도 함께 삼배하고 목탁에 맞춰 계속 절하는 것이 좋다.

해설

불교에서 모든 불공이나 법회를 시작할 때 삼귀의를 한다. 삼귀의란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과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승단께 귀의한다는 뜻이다. 불·보살님께 불공을 올릴 때는 삼귀의를 거불이라고 하는데, 거불은 모든 삼보께서 널리 법회에 강림(광림)하셔서 불공을 받으시도록 청하는 것이다.

‘나모’는 지극한 마음으로 돌아가 목숨다해 의지한다는 뜻이다. 범어 namas(다음 음절에 따라 namo로 변하는 경우가 많음)를 나모(南無)·나모(南謨)·納莫·謨로 음역되었고 귀명(歸命)·歸敬·귀의(歸依)·敬禮로 번역한다. 무엇에 돌아가 목숨 다해 의지하는가. 첫째는 변함없는 진리와 둘째는 진리를 체득하신 불·법·승 삼보님께 돌아가 목숨 다해 의지하는 것이다. 우리들이 본래 온 곳으로 다시 돌아가 목숨 다해 의지하는 것이다.

보소청진언은 널리 부르는 진언이다. 모든 의식에서 시방법계에 두루 계신 불·보살님이나 영가를 청할 때 이 진언을 한다.

유치는 불공을 올리는 연유를 아뢰는 의식이다. 신하가 왕에게 소를 올리는 격식으로 법왕에게 자비로써 살펴주시기를 청하는 것이다. 스님이 곡조를 넣어서 아뢰면 신도들은 뜻을 잘 음미하며 마음속으로 소원을 기원하면 된다.

유치의 내용은 첫째 삼보의 뛰어나고 훌륭한 능력을 찬탄하고, 둘째 불공을 올리는 도량과 재자의 주소와 이루고자 하는 소원을 아뢰고, 셋째 삼보께서 정성스러운 법연에 오셔서 재자의 소망을 살펴 공양을 받고 감응하시기를 아뢰는 순서로 구성되어 있다.

원문

○{청사}請辭
{나무 일심봉청}南無 一心奉請 {이대자비}以大慈悲 {이위체고}而爲體故 {구호중생}救護衆生 {이위자량}以爲資粮 {어}於{제병고}諸病苦 {위작양의}爲作良醫 {어실도자}於失道者 {시기정로}示其正路 {어암야중}於闇夜中 {위작광명}爲作光明 {어빈궁자}於貧窮者 {영득복장}永得伏藏 {평등요익}平等饒益 {일체중생}一切衆生 {청정법신}淸淨法身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원만보신}圓滿報身 {노사나불}盧舍那佛 {천백억화신}千百億化身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 {서방교주}西方敎主 {아미타불}阿彌陀佛 {당래교주}當來敎主 {미륵존불}彌勒尊佛 {시방상주}十方常住 {진여불보}眞如佛寶 {일승원교}一乘圓敎 {대화엄경}大華嚴經 {대승실교}大乘實敎 {묘법화경}妙法華經 {삼처전심}三處傳心 {격외선전}格外禪詮 {시}十{방상주}方常住 {심심법보}甚深法寶 {대지문수보살}大智文殊菩薩 {대행보현보살}大行普賢菩薩 {대비관세음보살}大悲觀世音菩薩 {대원지장보살}大願地藏菩薩 {전불심등}傳佛心燈 {가섭존자}迦葉尊者 {유통교해}流通敎海 {아난존자}阿難尊者 {시방상주}十方常住 {청정승보}淸淨僧寶 {여시삼보}如是三寶 {무량무변}無量無邊 {일일주변}一一周<H78C8> {일일진찰}一一塵刹 {유원자비}唯願慈悲 {연민유정}憐愍有情 {강림도량}降臨道場 {수차공양}受此供養 (3번)

역문

○청사(청하는 대상인 삼보를 밝히는 말씀)
일심으로 귀의하며, 대자비로 체를 삼아 중생을 구호하고자 자산과 양식이 되옵시고, 병들어 고통받는 자에겐 어진 의사가 되옵시고, 방황하는 이들에겐 올바른 길을 일러주시고, 어둠 속을 헤매이는 자에겐 대광명을 주시고, 빈곤한 자에겐 영원한 소망을 주시어 모든 중생들을 두루 충만하게 하옵시는 청정법신이신 비로자나 부처님과 원만보신이신 노사나 부처님과 천백억 가지로 변화하신 석가모니 부처님과 극락세계의 도사이신 아미타 부처님과 오는 세상 용화세계에 하강하실 미륵부처님 등 시방에 항상 계옵시는 진여 그대로이신 불보와, 일승법의 원만한 교법인 대화엄경과 대승의 실교인 묘법연화경과 세 곳에서 마음의 도리를 전하신 격식 밖의 선문 등 시방에 항상하신 매우 깊은 법보와, 지혜 제일이신 문수사리 보살과 만행이 제일이신 보현보살과 자비롭기 으뜸이신 관세음보살과 대원본존이신 지장보살과 부처님의 마음을 전해받은 가섭존자와 교법을 전해 퍼뜨리신 아난존자 등 시방에 항상하신 청정한 승보와, 이와 같은 한량없고 끝없으사 낱낱이 티끌세계에 두루 하시는 삼보님을 청하옵나니, 자비로써 저희를 연민히 여겨 도량에 강림하여 이 공양을 받으옵소서.

진행

청사는 법주가 진행한다. 유치가 끝나면 요령을 세 번 울리고 나서 상단을 향해 큰절을 올리고 일어서면서 요령을 잡고 흔들면서 청사를 세 번 진행한다. 법주가 진행하는 동안 바라지는 불공하는 대상에 대한 정근을 하고, 청사의 ‘유원’ 하는 부분에서 법주가 요령을 한 번 채면 바라지는 목탁을 내려 ‘향화청’을 세 번 낭독하고 가영을 한다.

해설

유치에서는 불공 올리는 연유를 아뢰었고, 청사에서는 모든 불·보살님들이 자비와 덕으로 중생을 제도하신 것을 찬탄하고 불공 올리는 이곳에 오시기를 청한다.

청사를 세 번 하는 것은 부처님께서 정각을 이루신 후 열반에 드시려 하자 대범천왕이 중생을 위해 법륜(法輪) 굴려주시기를 거듭 세 번 청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모든 경전에서는 부처님께 문법(問法, 진리를 여쭈는 것)을 하거나 특별한 말씀을 드리고자 할 때는 항상 세 번 반복하므로 불공의식에서도 삼청을 한다.

이때 다섯 가지 예절을 갖추는데, 첫째 자리에서 일어나고, 둘째 오른 어깨를 벗어 메고(가사를 수할 때 오른 어깨를 드러내도록 되어 있음), 셋째 부처님 발 아래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넷째 무릎을 꿇고 앉아서 합장하고, 다섯째 정중하게 말씀드린다.

이와 같이 세 번 청하되, 부처님의 큰 공덕을 찬탄하는 내용이 앞에 온다. 부처님께서는 큰 자비심과 밝은 지혜로 중생을 고통으로부터 건지신 분이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하고, 올바른 삶으로 안내하는 경전을 찬탄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구제하고 위로는 깨달음을 추구하는 보살님과 스님들을 찬탄하며, 삼보께서 이 도량에 오셔서 공양을 받으시기를 청하는 것이다. 재자들도 지극한 마음으로 절하면서 스님과 같이 삼보를 청해 모셔야 한다.

원문

{향화청}香華請 (3번)
○{가영}歌詠
{불신보변시방중}佛身普遍十方中 {삼세여래일체동}三世如來一體同
{광대원운항부진}廣大願雲恒不盡 {왕양각해묘난궁}汪洋覺海渺難窮
{고아일심귀명정례}故我一心歸命頂禮 (반배)

역문

향과 꽃으로 청하옵니다

○가영(노래로 맞아들임)
부처님은 시방세계 두루하시니
삼세 여래 동일한 한몸이시네
중생을 구제하는 광대한 원과
넓디넓은 깨달음은 한량없어라
저희들은 일심으로 절합니다.

진행

향화청은 바라지가 목탁을 내리며 세 번 반배 하면 된다.
가영은 목탁으로 집전하고, ‘고아일심귀명정례’ 할 때 목탁을 내리면서 합장 반배한다.
재자들도 스님을 따라서 같이 절하면 된다.

해설

향화청은 향과 꽃으로 청한다는 말이다. 원래 인도에서 부처님께 공양 올릴 때 향을 뿌리고 꽃을 장식하는 데서 온 것이다. 요즘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영웅이나 운동선수가 지나가는 길을 꽃으로 장식하거나 오색 색종이를 뿌리는 것과 같은 이치로서, 중생에게 복전이 되는 삼보를 청하는 뜻에서 향과 꽃공양을 올리는 것이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도 과거 선혜 행자로 있을 때 구리선녀가 가진 꽃을 얻어 연등부처님께 공양하셨다. 부처님께 꽃을 올리는 것은 수행에 비유하여 올바르고 깨끗한 수행을 통하여 인격의 향기를 피워 내겠다는 부처님과의 약속이다. 그리고 꽃이 있으면 반드시 열매가 있으므로 불교의 인과법을 나타내는 의미도 있다.

향을 피우는 의미는 육조혜능의 『육조단경』 전향참회에서 부처님의 다섯 법신[五分法身]에 귀의하여 참회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부처님과 아라한이 갖추신 오분신을 향에 비유하여 향을 피우면서 부처님을 예경하는 것이다.

계향(戒香)은 계를 잘 지켜 그 공덕이 쌓여 향기처럼 널리 퍼지는 것이고, 정향(定香)은 삼매가 이루어져 여러 경계나 대상에 마음이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 것이며, 혜향(慧香)은 지혜가 여실히 성취되는 것이며, 해탈향(解脫香)은 열반의 다른 이름으로 모든 속박에서 벗어난 상태이며, 해탈지견향(解脫知見香)은 번뇌가 없어져 해탈하여 일체법을 확실하게 아는 지견의 향이다. 이렇듯 향을 피우는 것은 열심히 수행 정진하여 깨달음을 이루겠다는 뜻이다.

가영은 청사에서 삼보님을 일일이 거명한 후 강림하시도록 청하였고, 또다시 부처님의 공덕을 읊으면서 불공을 올리는 이 도량에 오시기를 청하는 노래이다.

여기서 시방이란 십방(十方)이란 말이다. 동남서북의 네 방위와 그 사이의 간방(동남남서서북북동)과 상방과 하방의 열 가지 방위를 말한다. 십방을 시방으로 부른 것은 동음이 연속해서 올 때 한 음가를 생략하는 경우(직금→지금) 때문이다. 시방에서는 불교의 우주관을 엿볼 수 있다. 다른 종교는 우리가 사는 세계를 평면적으로 본 데 비해, 불교에서는 이미 2500년 전에 우주를 입체적으로 보았기 때문에 사방과 간방 그리고 상하를 더하여 열 가지 방위를 말한 것이다. 현대 과학에서도 우주를 둥글게 보아 시작과 끝이 없는 무시무종하다고 한다. 이것은 불교가 과학적인 종교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삼보를 청하는 절차가 청사에서도 세 번 거듭 되지만, 향화청과 가영은 유치, 청사와 더불어 다시 세 번째로 부처님을 청하는 간절한 의미를 담고 있다.

원문

{헌좌진언}獻座眞言
{묘보리좌승장엄}妙菩提座勝莊嚴 {제불좌이성정각}諸佛坐已成正覺
{아금헌좌역여시}我今獻座亦如是 {자타일시성불도}自他一時成佛道
「옴 바아라 미라야 스바하」

역문

현좌진언(자리를 드리는 진언)
보리좌를 훌륭하게 꾸몄사온데
삼세제불 깨달음을 이룬 자리네
저희 드린 이 자리도 그 같사오니
우리 모두 불도를 이뤄지이다.
「옴 바아라 미라야 스바하」

진행

법주가 요령을 세 번 울리고 합장하고 ‘헌좌진언’ 제목을 하면서 부처님 전에 정례(큰절)하고 일어서서 합장한다.

바라지는 가영성으로 헌좌게를 외우고 ‘자타일시성불도’ 할 때 목탁을 내리고 헌좌진언을 세 번째 외울 때 다시 목탁을 내린다.

바라지가 헌좌게와 헌좌진언을 진행하는 동안 법주는 마지종을 친다. 마지종은 세 번 내렸다 올리고 마지막에 다섯 망치로 마무리한다.

해설

헌좌진언은 삼보를 자리에 앉도록 권하는 의식이다. 헌좌진언의 게송에서는 삼보께 자리를 권한 공덕으로 오는 세상에는 어리석음을 벗고 나와 남이 모두 함께 성불하기를 발원한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선혜 행자로 계실 때 연등부처님이 진흙탕 길을 지나가시려 하자 몸을 엎드리고 머리카락을 깔아 자신을 밝고 지나시기를 권하면서 발원하였던 것도 내세에 부처가 되게 해 달라는 큰 서원이었다. 이 발원으로 선혜 행자는 연등부처님께 내세에는 사바세계의 석가모니 부처님이 되리라는 기별[예언]를 받아 성불하신 것이다.

불공 중에 가장 큰 불공은 바로 부처가 되겠다는 서원이며, 성불하신 모든 부처님께 공양 올리는 자리를 만든 목적도 궁극적으로 부처가 되는 데 있다. 또한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의미도 모든 중생을 자신과 같이 깨달음을 열어 고통과 괴로움으로부터 자유롭게 해탈시키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헌좌진언은 지극한 마음으로 성불을 발원하며 부처님께 정성을 기울여서 자리를 권하는 것이다.

이상의 부분이 불공을 하기 위해 삼보를 청해 모시는 절차이다.

원문

{욕건만나라선송}欲建曼拏羅先誦
{정법계진언}淨法界眞言 「옴 람」 (7×3번)

역문

(만다라(만나라)를 건립하고자 하거든 정법계진언을 먼저 외운다)
정법계진언(법계를 깨끗이 하는 진언)
「옴 람」

진행

바라지가 목탁을 한 번 내려놓고 ‘욕건만나라선송 정법계진언’하고 다시 목탁을 서서히 내리며 ‘옴 람’을 외우면 되는데, 시간에 따라 일곱 번씩 세 번 외운다.
바라지가 목탁으로 진행하고 종두는 마지종을 친다.

해설

거불부터 헌좌진언까지는 서분에 해당되고, 여기서부터 본분으로 들어가는데 그 처음 순서로 욕건만다라선송을 부른다.

욕건만다라선송은 ‘만다라, 즉 공양 올리기 위한 깨끗한 단을 세우기 위해서는 먼저 정법계진언을 외우라’는 말이다. 범패에서는 이 부분을 ‘욕건이’라고 하여 독특한 소리로 하고 있다.

‘욕건만다라선송’은 백파스님의 「작법구감」에는 사성 표시를 하여 본문으로 표시하고 있고, 학조스님의 「진언권공언해」나 기타 의식문에는 표시가 전혀 없이 정법계진언만 나와 있으며, 안진호스님의 「석문의범」에서는 진행문이라는 해설을 붙여 놓아 여러 가지 다른 견해가 있다.

또한 불공을 드릴 때 제일 먼저 독경하는 천수경에 정법계진언이 있으므로 욕건만다라선송을 생략해야 옳다는 견해도 있다. 불공을 시작하여 이미 헌좌진언을 통해서 부처님을 자리에 청해 모셨는데 다시 수선스럽게 청소(정법계)를 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불공의식은 여러 부분이 중복되는 감이 있다. 정삼업진언, 건단진언, 개단진언의 다음에 나오는 정법계진언도 그렇고, 정삼업진언도 천수경의 십악참회를 통하여 깨끗이 한 것을 다시 맑히는 것이다. 또한 개단진언, 건단진언도 겹치는 부분이 있다.

따라서 ‘만다라를 건립하고자 하거든 정법계진언을 외운다’는 지문으로 이해하고 의식을 진행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한다. 단지, 불공을 약식으로 진행할 때는 천수경을 읽고 나서 거불과 유치·청사를 생략한 상태에서 ‘욕건만다라선송 정법계진언 옴 람’을 불러온 것을 보아 이때는 ‘만다라를 건립하고자 온 법계 맑히는 진언을 먼저 외웁니다’라고 하는 것이 훨씬 더 의미가 새롭다. ‘옴 람’은 ‘옴, 불꽃이여’정도의 의미를 안고 있다.

이 부분은 본분의 시작이다. 더욱 경건한 마음과 지극한 정성으로 부족한 것이 없지 않나 다시 한번 확인하는 것이라고 해야겠다. 부처님을 청하여 불공 올리는데 전생, 금생에 알게 모르게 지은 수많은 죄업을 맑히고 법계를 깨끗이 하는 일[정법계진언]은 얼마든지 여러 번 반복하더라도 넘치지 않을 것이다.

원문

○{공양게}供養偈
{공양시방조어사}供養十方調御士 {연양청정미묘법}演揚淸淨微妙法
{삼승사과해탈승}三乘四果解脫僧 {원수자비애납수}願垂慈悲哀納受 (3번)

역문

○공양게(공양을 올리는 노래)
시방삼세 부처님과 청정한 진리
펴내시는 미묘법과 삼승사과로
해탈하신 승가중께 공양하오니
자비를 드리우사 받으옵소서.

진행

바라지가 목탁으로 진행한다. ‘원수애납수’를 외울 때는 법주와 바라지가 함께 정례하고, 재자들도 스님을 따라서 같이 절하도록 한다.

해설

부처님 전에 올리는 공양의식은 마지를 올려서 불공할 때나 아침 저녁으로 기도할 때, 혹은 아침 예불시 어느 경우를 막론하고 상례화되어 있다. 공양게 또는 다게라고 불려지는 이 게송은 공양을 올리며 공양 받는 분들인 삼보님에 대한 찬탄과 함께 자비로써 공양 올리는 재자들을 거두워 주실 것을 바라는 노래이다.

조어사(調御士)는 부처님의 열 가지 별호(별명) 가운데 하나이다. 조어장부(調御丈夫)라고도 하며, 자세히는 가화장부조어사(可化丈夫調御士)라고 한다. 부처님은 능히 제도할 수 있는 일체의 장부(丈夫)를 다 조어(調御)하여 수도에 전념하게 할 수 있다. 자기자신을 잘 다스릴 뿐 아니라, 다른 중생도 대자(大慈)·대비(大悲)·대지(大智)로서 너그럽게 대하여 간절하고 적절한 말로 조복제어(調伏制御)하여 정도(正道)에 들게 하므로 조어장부라고 한다.

연양청정미묘법은 부처님께서 널리 펴신 청정하고 미묘한 법을 말한다. 불교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담겨 있는 경전을 중시하여 삼보중에 법보에도 공양을 올린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담긴 경전이 없다면 우리는 무엇으로 부처님을 만나겠는가. 그러므로 소중하게 경전을 다루어서 위로 넘어 다니거나 경전 위에 다른 물건을 올려놓지 말아야겠다.

삼승사과해탈승은 수행의 단계로서 삼승은 성문·연각·보살이며, 사과는 성문사과로서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이다. 즉 삼승사과는 해탈얻은 스님들 즉 승보를 말한다. 승보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직접 실천하면서 불자들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부처님과 같이 모든 집착과 괴로움으로부터 자유로워졌으며 그곳으로 모든 중생을 이끌어 줄 수 있으므로 삼보의 하나로 공양받는 것이다.

원수자비애납수는 공양 올리는 이의 마음을 어여쁘게 보시어 자비로서 공양을 받아 주실 것을 부탁드리는 말이다. 보리수 아래서 도를 얻으신 부처님께서는 깨달으신 경지를 『화엄경』으로 설하셨지만 중생들은 진리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그러나 다시 법을 설하기로 하신 것은 오직 자비심으로 중생을 불쌍하게 여겨 마침내 한 중생도 빠짐없이 구제하겠다는 본원 때문이었다. 이러한 자비의 본원에 호소하는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수많은 고행과 무한한 보시를 행하여, 일체의 번뇌를 여의고 거룩한 해탈과 열반을 이루셨다.

삼보는 큰 공덕으로 장엄하신 복전이기에 불공을 올려 원하는 소원을 이룰 수가 있는 것이다.

원문

○{진언권공}眞言勸供
<{향수나열}香羞羅列 {재자건성}齋者虔誠 {욕구공양지주원}欲求供養之周圓 {수장가지지변화}須仗加持之變化 {앙유}仰惟{삼보}三寶 {특사가지}特賜加持 「{나무시방불}南無十方佛 {나무시방법}南無十方法 {나무시방승}南無十方僧」

{무량위덕 자재광명승묘력}無量威德 自在光明勝妙力 {변식진언}變食眞言
「나막 살바 다타아다 바로기데 옴 삼바라 삼바라
훔」 (3번)

{시감로수진언}施甘露水眞言
「나모 소로바야 다타아다야 다냐타
옴 소로소로 바라소로 바라소로 스바하」 (3번)

{일자수륜관진언}一字水輪觀眞言
「옴 밤 밤 밤 밤」 (3번)

{유해진언}乳海眞言
「나모 사만다 못다남 옴 밤」 (3번)

{운심공양진언}運心供養眞言
{원차향공변법계}願此香供遍法界 {보공무진삼보해}普供無盡三寶海
{자비수공증선근}慈悲受供增善根 {영법주세보불은}令法住世報佛恩
「나막 살바 다타아데뱍 미새바모계뱍 살바타캄
오나아데 바라혜맘 옴 아아나감 스바하」 (3번)

역문

○진언권공(진언으로 가지하여 공양을 권함)
향긋한 공양을 나열함은 재자의 지극한 정성입니다. 공양이 두루 원만히 이루어지게 하려면 가지변화에 의지해야 하옵나니, 삼보님, 특별히 가지를 내리옵소서.

「시방의 불보님께 귀의합니다.
시방의 법보님께 귀의합니다.
시방의 승보님께 귀의합니다.」

무량위덕 자재광명승묘력 변식진언(한량없는 위덕과 자재한 광명 뛰어나고 묘한 힘으로 음식을 변화시키는 진언)
「나막 살바 다타아다 바로기데 옴 삼바라 삼바라 훔」

시감로수진언(감로수를 올리는 진언)
「나모 소로바야 다타아다야 다냐타
옴 소로소로 바라소로 바라소로 스바하」

일자수륜관진언(수륜을 관하는 일자 진언)
「옴 밤 밤 밤 밤」

유해진언(젖과 같이 부드럽게 하는 진언)
「나모 사만다 못다남 옴 밤」

운심공양진언(마음을 움직여 공양케 하는 진언)
향긋한 공양을 법계에 펴서
다함없는 삼보님께 공양하오니
자비로써 공양 받고 선근을 늘려
불법을 널리 펴게 하여지이다.
「나막 살바 다타아데뱍 미새바모계뱍 살바타캄
오나아데 바라혜맘 옴 아아나감 스바하」

진행

진언권공은 보통 요령을 흔들면서 진행하는데, 법주가 젓수는 (진행하는) 부분이다.

요령은 다른 진언을 저술 때는 방울이 한 쪽만 닿게 하지만 사다라니를 진행할 때는 보통 때보다 높이 들고 앞뒤로 방울을 부딪치면서 빨리 움직인다. 이것을 귀명요령이라고 하는데 귀높이까지 올려 빨리 흔드는 것이 관례이다. 요즘은 너무 경망하다 하여 다른 진언을 행할 때와 같이 심장을 향하여 천천히 흔드는 경우도 있다.

사다라니를 간단히 모실 경우에는 보공양진언과 같은 방법으로 목탁을 사용하여 거행하기도 한다.

해설

진언권공은 보통 사다라니라고 한다. 모든 불공에서 계속 반복되는 중요한 부분이다.
사다라니는 삼보 전에 올린 공양을 네 가지 진언을 통하여 훌륭하고 정제된 공양으로 변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부처님께 올린 공양은 정성껏 올렸더라도 부족한 점이 많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그 부족함과 문제점을 해결하는 방법을 삼보님의 가지에서 찾으려는 것이다.

진언권공의 뜻은 ‘향기로운 음식을 진설하여 재자(불공 올리는 사람)가 삼보님께 공양 올리는데, 그 공양을 시방세계에 두루 원만하게 하려면 가지(加持)로서 변화를 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보시를 행할 때는 ‘삼륜(三輪)이 공적(空寂)해야 한다’고 한다. 삼륜이란 보시를 행하는 자, 보시를 받는 자, 보시하는 물건을 말한다. 이 세 가지가 깨끗해야 한다는 것은 첫째 보시하는 사람의 마음이 순수해야 하는데 많은 이익을 얻으려거나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해서는 안 되며, 둘째 보시받는 스님이나 법사의 마음이 깨끗해야 하며, 셋째 보시하는 물건이 도둑질하거나 남의 것을 빼앗은 것이 아니라 정당한 노력으로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부처님께 불공 올리거나 절에 시주할 때에 반드시 지켜야 한다. 이렇게 정성을 다하여야만 올바른 불공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올린 공양을 가지해서 변화해야 하는데 그러한 변화는 오직 삼보님의 가피에 의해서만 이루어진다.

가지(加持)란 본래는 서는 것, 주처(住處) 등의 의미이며, 상응하여 관계하는 것, 호념(護念), 가호(加護)라고도 한다. 가지는 부처님의 가피를 말하며, 불·보살이 불가사의한 힘으로 중생을 돌보아 주는 것을 신변가지(神變加持)라고 한다.

또한 밀교에서는 부처님께서 대비와 대지로 중생에게 응하는 것이 가(加)이고, 중생이 그것을 받아서 지니는 것을 지(持)라고 한다. 부처님의 큰 자비가 중생에게 베풀어지고 중생의 믿음이 부처님께 감명되어 서로 어울리는 것을 삼밀가지(三密加持)라고 하는데, 부처님의 삼밀은 불가사의하기 때문에 밀(密)이라고 한다.

삼밀은 신밀(身密)·구밀(口密)·의밀(意密)로 수행하는 구체적인 방법이다. 첫째 몸은 부처님의 몸 모양과 같이 하되 수인(手印)을 맺어 결수(結手)하고, 둘째 마음은 부처님의 마음을 갖고, 셋째 입은 진언 외우는 것을 말한다. 여래의 삼밀과 중생의 몸과 말과 뜻의 체험 속에서 부처와 중생이 하나가 되게 하는 수행이다. 이러한 수행에 의해 부처가 되는 즉신성불을 성취할 수 있다고 한다.

부처님께 거친 음식을 올려도 향기로운 음식이 되는 것은 부처님의 복력과 신통력에 의해서이다. 그러므로 거룩하신 부처님과 거룩하신 가르침과 거룩하신 스님네께 특별히 가지를 내려 주시도록 청하는 것이다.

『중본기경』(부처님의 전기를 기록한 경)을 보면 부처님께서 말이 먹는 겉보리를 잡수신 말씀이 나온다.

부처님께서 기수급고독원에 계실 때였다. 지혜롭고 슬기가 밝으며 부자인 아기달 장자는 수닷타 장자로부터 부처님의 명성을 듣고 기원정사로 갔다. 부처님께 법문을 듣고 감화를 받은 아기달 장자는 안거하는 석달 동안 승가에 공양하기로 하고 부처님을 청하였다. 다음날 부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아기달의 집으로 가셨다. 그러나 아기달은 문을 열어주지 않으며 부처님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전날 집에 돌아온 아기달은 맛있는 음식을 장만하였으나 악마에게 홀려서 오욕락에 빠졌던 것이다.

마침 그 고을에는 큰 흉년이 들어서 부처님과 제자들은 사흘째 걸식을 하였으나 밥 한술도 얻지 못하였다. 그때 한 부인이 말을 키우는 사람한테서 말이 먹는 겉보리를 얻어다가 부처님께 정성으로 공양을 지어 올렸다.

아난은 ‘부처님께서는 여러 하늘과 국왕들이 올리는 공양도 오히려 거칠거늘 하물며 말이 먹는 보리를 어찌 드릴까!’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부처님께서 이를 아시고 아난에게 먹어보도록 하셨다. 아난이 그 음식을 먹어보니 거칠기는커녕 온갖 맛과 향기가 진동하는 훌륭한 음식이 되어 있었다.

안거를 마치신 부처님께서는 떠나시기 전 아난을 보내 아기달에게 작별인사를 하도록 하셨다. 아기달 장자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을 크게 뉘우치고 다시 칠일 동안 훌륭한 공양을 올렸다고 한다.

부처님께서는 이와 같은 일을 미리 알고 계셨다. 과거 오랜 옛적 반두월이라는 나라에 유위태자가 출가 수행하여 부처님이 되었을 때였다. 국왕이 부처님과 제자들을 청하여 공양하는 것을 보고 어떤 이가 ‘이런 사람에게 공양 올리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말이 먹는 보리나 먹여야 한다’고 하였다. 그가 거느렸던 오백 제자들도 그의 말에 동의하였다. 그러나 오직 사리불만이 그의 잘못을 지적하고 유위부처님의 덕을 칭찬하며 공양들기에 마하다고 하였다.

그때의 오백제자들은 오늘에야 그 과보를 받게 되었고, 사리불은 그 공덕으로 삼개월 동안 하늘에 가서 안거를 마쳤다고 한다.

이 경전에서 보면 비록 부처님께 말이 먹는 겉보리를 올렸더라도 맛있고 향기롭게 되는 것과 같이 일심으로 정성 다하여 올린 공양이 부처님께서 드시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가지해야 하는 것이다.

무량위덕 자재광명승묘력 변식진언은 ‘무량한 위덕과 자재한 광명, 그리고 빼어나고 묘한 힘으로 일체의 공양이 부족함이 없이 공양하실 수 있도록 음식의 질(質)과 양(量)을 변하게 하는 진언’이라는 것이다.

‘위덕’이란 대위덕, 대위신력으로 악을 제지시키는 힘이 있어 대위(大威)라고 하고, 선을 수호하는 공(功)이 있어 대덕(大德)이라고 한다. ‘자재’란 자유자재, 일체의 속박으로부터 풀려난 몸과 마음의 작용을 말한다. ‘광명’이란 불·보살의 몸에서 나오는 빛을 말한다. 그러나 단순한 빛이 아니라 『방광반야경(放光般若經)』의 「방광품(放光品)」이나 『관무량수경』 등에서 보이듯 여러 가지 변화를 일으켜 중생에게 이익을 주며 제도하는 것을 말한다.

『불설구발염구아귀다라니경』에 부처님의 진언을 설하시는 대목이 나온다. 아난존자께서 어느 날 항하안(恒河岸)에서 염구아귀(焰口餓鬼)를 만났는데, 아귀의 말이 ‘3일 후에 그대의 목숨이 다하고 아귀로 태어나리라. 이를 면하려면 무수한 아귀와 바라문에게 먹을 것을 베풀고 또 나를 위해 삼보에게 공양토록 하라’고 하였다. 이에 놀란 존자는 부처님에게 이러한 사실을 말씀드리고 가르침을 청하였다. 부처님께서는 한 그릇의 음식으로도 많은 아귀와 바라문에게 베풀 수 있는 다라니를 일러 주셨는데 이것이 ‘무량위덕 자재광명수승 다라니’이다. 그래서 여러 의식집에서 ‘변식다라니’는 다라니의 효능을 첨가하여 진언의 제목으로 삼은 것이다.

시감로수진언는 감로수(甘露水)를 올리는 진언이다. 감로는 범어 아므리따(amrta)의 번역으로 불사(不死), 천주(天酒)의 뜻을 지닌 생명수이다. 즉 이러한 보시로 하여금 기갈을 면하게 하고 청정한 삶을 누리게 하려는 목적에서 감로수를 베푸는 진언이다.

이 진언은 『감로경다라니주』를 근거하고 있으며, 이 경(經)에는 ‘물 한 줌을 취해서 진언을 외우면, 그 물 한 방울이 가마의 감로수로 변하여 모든 아귀들이 함께 마심에 부족함이 없이 모두 다 배부르다’라고 하며, 감로수를 베풀 때의 진언과 방법 그리고 공덕을 간단히 언급하고 있다.

일자수륜관진언은 ‘밤’일자(一字)로부터 대지를 받치고 있는 물만큼 많은 감로제호(甘露醍)가 유출(流出)되는 것을 관하는 진언이다. ‘수륜’이란 삼륜(三輪)의 하나로  밑에 있어 대지를 받치고있는 물[水]을 말한다. 깊이는 11억 2만 유순이고, 넓이는 지름이 억 3천 백 5십 유순이며, 둘레는 3억 1만 5십유순이라고 한다.

시감로수진언이나 일자수륜관진언의 독립된 역할을 하는 진언이라기 보다는 유해진언을 하기 위한 준비에 해당하는 진언이다. 정구업진언과 오방내외안위제신진언이 개법장진언을 모시기 위한 진언인 것과 같다.

『시제아귀음식급수법병수인』에서 진언의 수인(手印)과 관법(觀法)을 설명한 내용을 보면, ‘시무외인을 짓고, 시감로수진언을 외우면 능히 음식과 물이 한량없는 우유와 감로수로 변하고, 모든 아귀의 목구멍이 열리며, 많아진 음식을 평등히 먹게 된다’고 하였으며, ‘비로자나일자수륜관진언과 수인을 짓는데, 먼저 오른손 바닥 한 가운데에 이 ‘밤’자를 생각하되 우유빛과 같음을 생각하고, (이 ‘밤’자가) 변하여 8공덕수가 됨을 생각하고, (나아가 ‘밤’자에서) 일체의 감로제호가 유출됨을 생각하고, (생각이 여기에 이르면) 곧 손을 끌어 (물이 담겨 있는) 식기 위에 두고 ‘밤’자를 일칠편 외우라’고 되어 있다. 이 내용은 유해진언의 역할을 보면 명확해질 것이다.

유해진언는 ‘밤’ 일자로부터 대지를 받치고 있는 물만큼 많은 감로제호가 유출됨을 관하였으니, 이제 유해진언으로 모자람 없이 베풀어지도록 하는 진언이다. ‘유해’란 중생의 주림을 달래는 식량이 바다와 같이 많은 것을 나타낸다. 유(乳)는 소나 양 등의 젖으로 인도인들의 대표적인 식량이다. 경전에 자주 등장하는 소락제호는 정제된 우유를 가리키는 말이며, 감로와 함께 정신의 식량인 불법의 지극한 묘법(妙法)을 비유하는 표현으로 쓰이기도 한다.

이 진언은 『시제아귀음식급수법병수인』에서 ‘다섯 손가락을 펴서 식기(食器) 가운데를 향하게 하고, 우유 등이 이 ‘밤’자 가운데로부터 흘러나오되 마치 일월과 같은 우유의 바다여서 일체의 아귀들이 모두 배불리 먹어 모자람이 없음을 관상하라. 이 이름은 ‘보시일체아귀인진언’이며, 진언을 말하면 「나모 사만다 못다남 옴 밤」이다. 이 진언을 외우면 공덕이 무량하다’는 내용을 근거로 한다.

무량위덕 자재광명승묘력 변식진언은 ‘모든 여래께 귀의하오니, 관찰하시고 옴 자재하고 자재하신, 옴’, 시감로수진언은 ‘흐르시는 여래께 귀의하오니, 이와 같이 옴, 흐르고 크게 흐르고 크게 흐르고 흐르소서, 스와하’, 일자수륜관진언은 ‘옴, 물, 물, 물, 물’, 유해진언은 ‘편만하신 분께 귀의하오니, 옴, 물이여’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사다라니 지송시 요령을 빨리 울리는 이유는 같은 내용을 반복하는 데서 오는 자연적인 현상이다. 요령은 귀에 대고 울리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것은 여러번 반복해서 진언을 외워야 하기 때문에 동일한 동작에서 유발되는 근육의 피로도를 줄이고 보다 효과적으로 지송하기 위해서이다. 울리는 요령 소리와 지송하는 진언의 내용이 다소 시끄럽게 느껴지지만, 종교적 정신세계를 몰입하는 데 매우 효과가 크다. 요령은 명부중생을 천도하려는 염원이 담긴 범종(梵鍾)을 축소한 것이다. 요령을 울려 모든 중생이 고통에서 벗어나 극락왕생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한 마음으로 사다라니를 한 뒤에 운심공양진언을 하게 된다.

운심공양진언은 소례(공양을 받는 분)께서 계신 쪽으로 공양을 옮겨 진지하도록 하는 것으로 오직 마음 가운데서 공양에 대한 생각을 일으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운심공양진언 전에 발원하는 게송을 보면, ‘이 향기로운 공양을 끝없는 삼보님의 바다에 드리오니, 자비로써 받으시고 중생들의 박약한 선근을 늘게 하여 부처님 법이 세간에 오래 머물러 부처님의 은혜를 갚을 수 있게 하여 주십시오’라는 내용이다.

운심공양진언은 ‘귀의합니다, 일체 여래께, 일체안(眼:태양)께, 일체방향에서 발생자에게, 범신이여, 옴, 허공행자여, 스와하’ 정도로 해석해 볼 수 있다.

진언의 의미는 의미가 있을 수도 있고, 크지 않을 수도 있다. 진언의 의미는 제목에서 그 내용을 알려주고 있다고 보여지는데, 전통적으로 진언의 제목은 읽고 게송의 제목을 읽지 않는 전통이 그것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삼보님께 공양 올리면 그 공양으로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과 그것을 전하시는 스님들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으며, 우리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 바르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 삼보가 이 세상에 오래 존재하려면 불보와 법보를 지키며 수행하는 승보가 튼튼해야 한다.

그리고나서 다시 부처님께 그 은혜를 갚을 수 있게 하여 달라는 발원을 한다. 이렇게 하는 발원으로 부처님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다.

의식을 진행하는 스님이나 재자는 모두 이 깊은 뜻을 알고 사다라니를 진행하여 가지가 정확히 이루어지도록 정성을 다해야 할 것이다.

원문

○{예참}禮懺

<{지심정례공양}至心頂禮供養 {삼계도사}三界導師 {사생자부}四生慈父 {시아본사}是我本師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

{지심정례공양}至心頂禮供養 {시방삼세}十方三世 {제망찰해}帝網刹海 {상주일체}常住一切 {불타야중}佛陀耶衆

{지심정례공양}至心頂禮供養 {일승원교}一乘圓敎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대승종교}大乘宗敎
{실상묘법연화경}實相妙法蓮華經

{지심정례공양}至心頂禮供養 {시방삼세}十方三世 {제망찰해}帝網刹海 {상주일체}常住一切 {달마야중}達摩耶衆

{지심정례공양}至心頂禮供養 {대지문수사리보살}大智文殊師利菩薩 {대행무궁}大行無窮 {보현보살}普賢菩薩
{원통교주}圓通敎主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대희대사}大喜大捨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 {유명교주}幽冥敎主 {지장보살}地藏菩薩
{일체청정}一切淸淨{대해중보살}大海衆菩薩{마하살}摩訶薩

{지심정례공양}至心頂禮供養 {영산당시}靈山當時 {수불부촉}受佛付囑 {십대제자}十大弟子 {십육성}十六聖
{오백성}五百聖 {독수성}獨修聖 {내지}乃至 {천이백제대아라한}千二百諸大阿羅漢
{무량}無量{자비성중}慈悲聖衆

{지심정례공양}至心頂禮供養 {서건동진}西乾東震 {급아해동}及我海東 {역대전등}歷代傳燈 {제대조사}諸大祖師
{천하종사}天下宗師 {일체미진수}一切微塵數 {제대선지식}諸大善知識

{지심정례공양}至心頂禮供養 {시방삼세}十方三世 {제망찰해}帝網刹海 {상주일체}常住一切 {승가야중}僧伽耶衆

{유원}唯願 {무진삼보}無盡三寶 {대자대비}大慈大悲 {수차공양}受此供養 {명훈가피력}冥熏加被力

{원공법계제중생}願共法界諸衆生 {자타일시성불도}自他一時成佛道

역문

○예참(예배하며 참회함)
지극한 마음으로 (엎드려 절하오며) 삼계의 스승이시며 사생의 자비로운 어버이 석가모니 부처님께 공양합니다.

지극한 마음으로 (엎드려 절하오며) 시방에 항상 계신 모든 부처님께 공양합니다.

지극한 마음으로 (엎드려 절하오며) 일승의 뚜렷한 가르침 대방광불화엄경, 대승의 마지막 가르침 실상의 묘법연화경에 공양합니다.

지극한 마음으로 (엎드려 절하오며) 시방에 항상 계신 부처님의 가르침에 공양합니다.

지극한 마음으로 (엎드려 절하오며) 큰 지혜의 문수사리보살, 큰 행이 가없는 보현보살, 원통교주 관세음보살, (크게 버리시는 대세지보살), 유명교주 지장보살님과 일체 청정하신 모든 큰 보살님들께 공양합니다.

지극한 마음으로 (엎드려 절하오며) 영산당시 부처님께 부촉받은 열여섯 성인, 오백 성인, 천이백의 모든 아라한과 한량없이 자비하신 성현들께 공양합니다.

지극한 마음으로 (엎드려 절하오며) 인도로부터 중국과 우리 대한에 법을 전해주신 모든 크신 조사, 종사, 일체의 티끌과 같이 많은 선지식께 공양합니다.

지극한 마음으로 (엎드려 절하오며) 시방에 항상 계신 모든 스님네께 공양합니다.

다함없는 삼보님, 크신 자비로써 이 공양을 받으시고 가피력을 입어 법계의 모든 중생들이 함께 성불하게 하여지이다.
진행

법주가 사다라니를 진행하는 동안 바라지는 공양게의 ‘원수자비애납수’에서 절을 한 상태에서 상체만 세우고 앉아 있다가 운심공양진언을 할 때에 목탁을 내리고 예참을 하기 시작한다.

법주는 사다라니를 마치고 나면 바라지와 함께 예참을 진행하고 재자들도 스님의 인도하는 소리에 맞춰 정례하며 예참을 한다. ‘유원’할 때에 목탁을 한 번 울려서 엎드린 자세에서 고개만 들어 합장하고 난 다음 다시 이마를 에 조아리는 고두례를 한다. 그 다음 일어서서 ‘자타일시성불도’ 할 때 반배를 한다.

해설

사다라니 진언으로 거친 음식을 향기로운 음식으로 변식시켰으니, 이제는 공양을 직접 부처님 전에 올려야 한다. 부처님과 보살님, 그리고 스님네들의 명호를 부르면서 공양 올리는 의식이 예참이다.

예로부터 부처님 전에 올리는 예참에는 여러 형태가 있다. 모든 부처님 명호와 경전과 다라니명과 선지식의 명호를 거드는 대예참, 대예참을 간략하게 줄인 소예참, 간편하게 줄인 칠정례, 더 간략하게 하는 삼정례 등이다.

또 예참은 각 사찰이나 법당마다 모셔진 주존(主尊:주가 되시는 부처님이나 보살님)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 삼보통청에서는 삼보님을 함께 모시는 불공이므로 전체 삼보님을 통털어서 예참을 한다. 요즈음 예불의식은 주로 칠정례를 하는데 경장(經藏)에 대한 예참을 추가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지심정례공양 삼계도사 사생자부 시아본사 석가모니불’은 삼계에서 가장 뛰어난 스승이시고 사생의 자비로운 어버이시며, 우리에게 진리를 일깨워 주신 석가모니 부처님께 지극한 마음으로 예배하며 공양 올린다는 것이다.

여기서 삼계는 생사를 거듭하는 미혹한 세계로 욕계·색계·무색계이다. 욕계는 탐욕의 세계, 욕심을 가지고 사는 세계를 말하고, 색계는 탐욕은 여의었으나 물질을 완전히 여의지 못한 세계, 무색계는 물질마저 완전히 초월한 순수한 정신세계를 말한다.

또한 삼계는 28개의 하늘로 되어 있다. 욕심과 육체를 가지고 있는 개의 하늘은 욕계이고, 가벼운 몸을 가지고 있는 18개의 하늘은 색계이고, 형체마저도 없는 개의 하늘은 무색계로 나뉘어진다.

삼계에는 식욕·음욕·수면욕을 가지고 사는 세계로 육도가 있다. 육도는 자신이 지은 죄업에 따라 가는 곳을 말하는데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이며, 지옥·아귀·축생을 삼악도(三惡途)라고 하고 아수라·인간·천상을 삼선도(三善途)라고 한다.

삼악도 중에서도 가장 나쁘고 고통받는 곳이 지옥세계이다. 지옥은 끊임없이 고통받는 세계로 하루에 만 번 살고 만 번 죽는 고통을 당한다. 뜨거운 불로 형벌을 받는 팔열지옥과 혹독한 추위로 형벌을 받는 팔한지옥이 있다.

아귀세계는 재물에 인색하고 음식에 욕심이 많거나 남을 시기·질투하는 자가 가게 된다고 한다. 그칠 줄 모르는 탐욕으로 만족할 줄 모르고 감사할 줄 모른다. 아귀는 배가 남산만 하고 목구멍은 바늘구멍만 하여 먹어도 먹어도 배가 채워지지 않고 음식을 목에 가져가기만 하면 불로 변해버린다고 한다.

축생세계는 짐승을 말한다. 짐승들은 지혜가 모자라서 오직 먹고 사는 일에만 정신을 쏟는다. 인간으로 태어나 마음을 닦지 않고 먹고 사는 데만 급급한 사람은 죽어서 축생보를 면키 어렵다.

삼선도 중에서 아수라는 인간과 축생의 중간에 위치한 세계이다. 원래 아수라는 도리천의 신이었는데 딸을 제석천에게 빼앗긴데 격분하여 제석천과 전쟁을 하였으나, 모두 패하여 천계에서 추방당했다. 투쟁을 좋아하고 분란을 일으키므로 매우 시끄럽고 어지러운 곳을 아수라장이라고 한다.

다음은 우리가 사는 인간세계이다. 인간세계는 매우 고통스럽다고 하나 고통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괴로움이 지나면 즐거움이 오고 즐거움이 지나면 괴로움이 오는 반복을 계속한다. 자기가 지은 선악에 따라 고통과 즐거움이 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어서 수행하기에 가장 좋은 세계라고 말하며, 인간세계만이 부처님을 만나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을 수 있는 곳이다.

천상세계는 신들이 사는 곳이다. 사왕천 중에서 지국천은 동쪽을 지키며, 광목천은 서쪽을, 증장천은 남쪽을, 다문천은 북쪽을 지킨다. 그 위에 도리천·야마천·도솔천·낙변화천·타화자재천이 있는데, 여기까지를 욕계라고 하며 그 위의 색계·무색계를 합하여 삼계라고 한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도 태어나기 이전에 도솔천에 계셨다고 하며, 지금은 미륵보살이 살고 있는데 미래에 부처가 되어 이 세계에 내려온다고 한다.

그러므로 석가모니 부처님을 삼계도사(三界導師) 또는 삼계대사(三界大師)라고도 하며, 온 우주 즉 삼계의 중생들을 인도하는 크신 스승님이란 뜻이다.

법화경에서는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 위에 수행을 통하여 얻어지는 성문, 연각, 보살, 불의 세계를 더하여 십법계가 있다고 한다.

이러한 십법계에 태어나는 방법이 네 가지 있는데 그것이 사생(四生)이다. 우주의 모든 중생이 태어나는 방법에 따라 구분한 것으로 부모의 몸 안에서 일정 기간 길러서 낳는 태생(胎生), 알을 낳아서 부화시키는 난생(卵生), 습한 데서 생겨나는 습생(濕生), 또 어미의 몸을 빌지 않고 자신의 업력에 따라 저절로 변화되어 나는 화생(化生)이다.

화생은 의지하지 않고 홀연히 생겨난다는 뜻인데, 지옥·아귀·아수라·천상에 태어나는 방법을 말한다. 부처님의 지혜를 믿는 행업에 따라 천상에 나거나 업력에 끌려서 지옥중생이나 아귀나 아수라가 되는 것을 말한다.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태어난 모든 중생들을 자비로써 사랑하시며 차별하지 않고 평등하게 감싸주시므로 사생자부(四生慈父)라고 하는 것이다.

시아본사(是我本師)란 나의 근본되는 스승이란 말이다. 본사란 스스로 뛰어난 정진으로 진리를 알아내서 우리에게 일러주신 최초의 스승으로, 많은 부처님 가운데서도 석가모니 부처님을 우리의 근본되는 스승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예참할 때도 제일 먼저 석가모니 부처님께 하는 것이다.

‘지심정례공양 시방삼세 제망찰해 상주일체 불타야중’은 시방과 과거·현재·미래와 수많은 세계에 항상 계신 모든 부처님께 지극한 마음으로 예배하며 공양 올린다는 것이다.

대승불교권인 동북아의 중국, 한국, 일본에서는 소의(所依)로 하는 대승경전에 따라 많은 부처님을 인정하고 있다.

부처님은 시간적으로는 삼세와 공간적으로는 시방세계에 셀 수 없이 많이 계신다고 한다. 삼세란 과거, 현재, 미래를 말한다. 과거의 부처님으로는 비바시불, 시기불, 비사부불, 구류손불, 구나함모니불, 가섭불, 석가모니불이고, 현재의 부처님은 현재 각처에서 설법하고 계신 모든 부처님이며, 미래의 부처님으로는 미륵불과 법화경에서 부처님으로부터 모든 초목에 이르기까지 미래에 부처님이 될 것이라고 예언을 받았던 모든 부처님을 말한다.

시방의 부처님은 동방 만월세계의 약사유리광여래불, 남방 환희세계의 보승여래불, 서방 극락세계의 아미타불, 북방 무우세계의 부동존여래불, 중방 화장세계의 비로자나불 등이다.

제망찰해의 제망은 제석천의 보망, 즉 인드라망(因陀羅網)을 말하며, 찰해는 육지와 물, 즉 세계를 말한다. 제석천 보망은 보배구슬들이 서로 비추기를 반복하여 반사되는 수가 무한대가 된다고 한다. 보망에 비친 보배구슬과 같이 셀 수 없이 많은 세계와 그 곳에 계신 모든 부처님께 절을 하며 공양 올리는 것이다.

‘지심정례공양 일승원교 대방광불화엄경 대승종교 실상묘법연화경’은 일체중생을 깨닫게 하는 법문인 화엄경과 대승 최고의 가르침인 법화경에 지극한 마음으로 예배하며 공양 올린다는 것이다.

‘지심정례공양 시방삼세 제망찰해 상주일체 달마야중’은 시방과 과거·현재·미래와 수많은 세계에 항상 계신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에 지극한 마음으로 예배하며 공양 올린다는 것이다.

삼라만상이 변해가는 자체가 모두 비로자나 부처님의 설법이라고 한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직접 설하여 드러내신 법문 이외에도 수많은 법문이 있고, 그 모든 법문과 진리 자체에 대하여 엎드려 절하며 공양을 올리는 것이다.

‘지심정례공양 대지 문수사리보살 대행무궁 보현보살 원통교주 관세음보살 대희대사 대세지보살 유명교주 지장보살 일체청정대해중보살 마하살’은 큰 지혜의 문수사리보살, 큰 행이 가없는 보현보살, 원통교주 관세음보살, 크게 버리시는 대세지보살, 유명교주 지장보살님과 일체 청정하신 모든 큰 보살님들께 지극한 마음으로 예배하며 공양 올린다는 것이다.

문수보살은 지혜의 보검으로 중생의 모든 번뇌를 끊어버리는 보살님으로 석가모니불의 협시보살로 왼쪽에 계신다. 바른손에는 지혜의 칼을 들고 왼손에는 꽃 위에 지혜의 그림이 있는 청련화를 쥐고 계신다. 벌써 성불하셨는데 부처님의 교화를 돕기 위해 보살의 자리에 있다고 하며, 부처님의 지혜를 상징한다.

보현보살은 석가모니불의 오른쪽에 계시며 부처님의 자비를 상징한다. 부처님의 중생 제도하는 일을 돕고 실천하시는 행의 보살님이다. 또 중생의 목숨을 길게 하는 덕을 가지셨다고 보현연명보살이라고도 한다. 흰 코끼리를 타시거나 연화대에 앉은 모양을 하고 계신다.

관세음보살은 중생의 음성을 듣고 고뇌에서 벗어나게 해주시므로 관세음, 모든 현상을 두루 관찰하듯이 중생의 구제도 자재하므로 관자재, 모든 소리를 두루 들으므로 원통대사라고도 한다. 중생의 근기에 맞추어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시므로 보문시현이라 하며, 33신이 있다고 한다. 아미타불을 보좌하는 협시보살이시다.

대세지보살은 관세음보살과 함께 아미타불을 보좌하고 지혜의 광명으로 중생을 구제하는 힘이 크다고 하여 대세지라고 하고, 또 발을 디디면 삼천세계와 마군의 궁전이 진동하므로 대세지라 한다.

지장보살님은 석가모니불의 입멸 후 미륵보살이 성불할 때까지 중생을 제도하는 보살님이시다. 모든 중생이 구원받을 때까지 부처가 되지 않겠다는 큰 서원을 세운 보살이므로 대원본존 지장보살이라고 한다. 지옥에서부터 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계까지 육도의 중생을 제도하는 보살이시다. 특히 죽은 뒤의 세계[유명(幽冥)]에서 헤매이거나 무주고혼으로 떠도는 영혼들을 구제하시는 보살님이다.

그 외에 모든 청정하신 행을 성취하여 중생을 제도하시는 큰 바다와 같이 많은 보살님들을 일체청정대해중보살이라고 한다. 마하살은 다른 중생을 능히 구제할 능력이 있는 큰보살님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러한 모든 보살님께도 빠짐없이 엎드려 절하며 공양을 올리는 것이다.

칠정례에는 문수보살, 보현보살, 관세음보살, 지장보살님에 대한 예참이 이루어지고 있고 대세지보살과 일체청정대해중보살에 대한 예참이 없다.

‘지심정례공양 영산당시 수불부촉 십대제자 십육성 오백성 독수성 내지 천이백 제대아라한 무량자비성중’은 영산당시 부처님께 부촉받은 열여섯 성인, 오백 성인, 천이백의 모든 아라한과 한량없이 자비하신 성현들께 지극한 마음으로 예배하며 공양 올린다는 것이다.

우리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지금도 알 수 있는 것은 그 가르침대로 수행하여 법계에 이르른 제자들이 계시기 때문이다. 만약 그분들이 수행하여 얻어진 진리의 세계가 없었다면 그 가르침이 다시 제자들에게 전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수행하여 성인(아라한:번뇌를 모두 없앴으므로 살적이라고 하며, 공양을 받을 자격이 있다 하여 응공이라고 함)이 되신 부처님의 직제자들에 대하여 공양 올리는 것이다.

부처님으로부터 세간에 불법을 널리 전파하여 중생을 구제할 것을 부촉받은 십대 제자(지혜제일 사리불 존자, 신통제일 목건련 존자, 두타제일 가섭 존자, 해공제일 수보리 존자, 설법제일 부루나 존자, 논의제일 가전연 존자, 천안제일 아니룻타 존자, 지계제일 우바리 존자, 밀행제일 라후라 존자, 다문제일 아난 존자)와 열 여섯의 큰 성인과 오백의 성인, 홀로 닦아 되신 성인, 부처님을 항상 곁에서 모시고 수행하시던 일천이백의 성인들께도 엎드려 절하며 공양 올리는 것이다.

‘지심정례공양 서건동진 급아해동 역대전등 제대조사 천하종사 일체미진수 제대선지식’은 인도로부터 중국과 우리 대한에 법을 전해주신 모든 크신 조사, 종사, 일체의 티끌 같이 많은 선지식께 지극한 마음으로 예배하며 공양 올린다는 것이다.

서건이란 인도(구체적으로 인도의 서쪽 간다라를 칭한다고 볼 수 있음)를 말하고, 동진이란 중국, 해동이란 우리 대한민국을 말한다. 인도에서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이르기까지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 스스로 수행하여 법계를 얻고, 대대로 그 법문을 전해주신 모든 선지식에 대하여 엎드려 절하며 공양 올리는 것이다.

‘지심정례공양 시방삼세 제망찰해 상주일체 승가야중’은 시방과 과거·현재·미래와 수많은 세계에 항상 계신 모든 승가에 지극한 마음으로 예배하며 공양 올린다는 것이다.

현재 시방세계, 즉 온 우주에 머물러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 수행하고, 그 가르침을 전하고 계시는 모든 승가에 일일이 공양 올리는 것이다.

‘유원 무진삼보 대자대비 수차공양 명훈가피력 원공법계제중생 자타일시성불도’는 ‘삼보님, 크신 자비로 어여삐 여기시어 이 공양을 받으시고 온 법계의 모든 중생이 함께 성불하게 하옵소서’라는 것이다.

명훈가피력이란 언제나 부처님의 자비의 힘으로 보호 받는 것을 말한다. 재난은 저절로 물러가고 항상 기쁘고 편안하고 즐거움이 가득하게 된다.

다함없는 삼보님께 일일이 지극한 마음으로 엎드려 절하며 공양 올리고 난 후, 나와 남이 함께 성불하는 것을 발원한다. 왜냐하면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나온 본 뜻은 모든 중생이 성불하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간절하고 지극한 마음으로 성불을 발원하는 불공을 올릴 때, 다른 소원들은 저절로 성취되는 것이다.

결국 모든 중생들의 고통은 변화하는 것을 영원한 것으로, 괴로움을 즐거움으로, 참나가 아닌[無我] 것을 참나로 알고 사는 데서 발생한다. 그러므로 완전한 불공은 모든 번뇌를 소멸시키고 성불하는 것에 있다.

원문

{보공양진언}普供養眞言
「옴 아아나 삼바바 바아라 훔」 (3번)

{보회향진언}普廻向眞言
「옴 사마라 사마라 미마나 사라 마하 자가라바훔」 (3번)

{대원성취진언}大願成就眞言
「옴 아모가 살바다라 사다야 시베 훔」 (3번)

{보궐진언}補闕眞言
「옴 호로 호로 사야 모계 스바하」 (3번)

○{탄백}歎白
{찰진심념가수지}刹塵心念可數知 {대해중수가음진}大海中水可飮盡
{허공가량풍가계}虛空可量風可繫 {무능진설불공덕}無能盡說佛功德

역문

보공양진언(널리 공양하는 진언)
「옴 아아나 삼바바 바아라 훔」

보회향진언(널리 회향하는 진언)
「옴 사마라 사마라 미마나 사라 마하 자가라바 훔」

대원성취진언(소원을 성취하는 진언)
「옴 아모가 살바다라 사다야 시베 훔」

보궐진언(빠진 것을 보충하는 진언)
「옴 호로 호로 사야 모계 스바하」

○탄백(부처님의 덕상을 찬탄함)
티끌 수를 마음으로 셀 수 있거나
바닷물을 마셔서 없애 버리고
허공 세고 바람을 맬 수 있어도
부처님의 공덕은 다 말 못하리.

진행

예참을 마치고 일어서면 일자 목탁에 맞춰 ‘보공양진언’부터 탄백까지 진행한다. 탄백을 하기 전에 정근을 할 수도 있고, 시간에 따라 정근을 하지 않고 막바로 탄백을 하고 축원을 할 수도 있다. 탄백의 끝에서 목탁을 맞춰 반배하면 된다.

정근을 할 때는 정근문대로 정근을 하고 탄백을 하면 된다. 때에 따라서는 삼보통청의 끝에 관음정근을 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상황에 따라 진행하면 된다.

해설

부처님과 가르침과 보살중을 포함한 승가에 대한 예참을 마치고 나면 다시 공양의 공덕을 가일층 크게 하는 진언을 외우게 된다.

보공양진언은 우주법계에 충만하신 모든 삼보님께 공양이 전부 돌아가도록 하는 진언이다. 청정법식(淸淨法食)이 법계에 두루 하게 되었음을 알려 공양을 권하는 진언으로, ‘옴, 虛空, 遍滿, 正有, 금강, 훔’으로 새길 수 있다.

보회향진언은 자신이 지은 공덕을 널리 모든 법계의 일체중생에게 두루 회향하는 진언이다. 지금까지 베풀어온 불법과 법식의 공덕과 재자가 닦은 선근 공덕을 자신만이 수용하려고 하면 조그마한 공덕에 불과하다. 보회향진언은 그 공덕을 우주 법계에 가득 찬 일체 중생에게 회향하는 큰 마음을 일으킴으로써 공덕을 더욱 키우기 위해 널리 회향하는 진언이다. 이 진언은 ‘옴, 회향, 회향, 수레에, 가다, 大輪者께 훔’의 뜻이다.

대원성취진언은 재자의 소원 불공을 올릴 때 가지고 있는 소망을 성취시키고자 하는 진언으로 ‘옴, 成就, 어디에서나, 衆生에게, 시바신에게, 훔’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보궐진언은 빠진 것을 보충하는 진언이다. 불공을 하거나 진행하는 이가 아무리 열심히 준비하고 불공을 진행한다 하더라도 원만하게 모든 것을 갖추지 못하는 경우를 대비하여 불공에 모자람이 없도록 빠진 것을 보충하는 진언이다. 진언의 내용은 ‘옴, 후루후루, 合同(伴)成就에게’의 뜻으로, ‘후루후루’는 기쁨을 나타내는 감탄사이다.

원문

○{정근}精勤
{나무}南無 {삼계도사}三界導師 {사생사부}四生慈父 {시아본사}是我本師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 ~

{석가여래종자심진언}釋迦如來種子心眞言
「나모 사만다 못다남 박」 (8번)
{천상천하무여불}天上天下無如佛 {시방세계역무비}十方世界亦無比
{세간소유아진견}世間所有我盡見 {일체무유여불자}一切無有如佛者

역문

○정근
삼계의 크신 스승이시고 자비로운 어버이이시며 저희들의 근본 스승이신 석가모니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석가모니불」 ~
석가여래종자심진언 「나모 사만다 못다남 박」
천상천하 부처님 같은 이 없고
시방세계 어디에도 비할이 없어
온 세상 모든 것을 다 볼지라도
부처님 같은 이는 아무도 없네.

진행

정근을 할 때는 목탁치는 속도를 적당히 맞추어 대중들이 함께 정근을 할 수 있도록 하며, 불공을 올리는 재자는 정근에 맞춰 부지런히 절을 하도록 해야 한다. 정근할 때는 절을 하지 않고 축원할 때 절을 해야 옳다고 주장하는 분도 있다.

해설

정근은 선근을 더욱 자라게 하고 악을 여의려고 부지런히 수행한다는 뜻이다. 불보살님의 지혜와 공덕을 찬탄하면서 명호를 부르는 것을 말한다. 산란한 마음을 안정시켜 편안하게 하며 어떤 환경에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맑고 밝아지게 하는 데 그 의의가 있다.

석가여래종자심진언의 뜻은 ‘귀의합니다, 보편하신 제불께, (종자인) 박’이다.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은 몸과 입과 마음으로 지은 업장을 참회하는 것이다.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면서 몸을 기울여 절을 하는 사참(事懺)을 부지런히 행하게 될 때 진정한 참회인 이참(理懺)도 마음에서 이루어진다. 어떤 이는 우선 이치로 참회하고 다음에 육신으로 참회해야 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진정한 소원성취는 많은 사참을 하고 나서 마음 깊숙한 곳에서 이참이 될 때 비로소 이루어진다.

그리고 자신만의 업장을 참회하는 것이 아니라 ‘법계 내의 모든 중생들의 업장이 한꺼번에 소멸되어 날 때마다 항상 보살도를 행하여지이다’라는 발원을 해야 올바른 불공이 된다. 이렇게 불공은 지극한 정성과 마음에서 이루어지는 참회와 발원으로 성취되는 것이다.
원문

○{축원}祝願
{앙고}仰告 {시방삼세}十方三世 {제망중중}帝網重重 {무진삼보자존}無盡三寶慈尊 {불사자비}不捨慈悲 {허수낭감}許垂朗鑑 {상래소수공덕해}上來所修功德海 {회향삼처실원만}廻向三處悉圓滿

{사바세계}娑婆世界 {차사천하}此四天下 {남섬부주}南贍部洲 {해동}海東 {대한민국}大韓民國 {사}寺 {청정수월도량}淸淨水月道場 {원아금차}願我今此 {지극정성}至極精誠 {헌공발원재자}獻供發願齋者 {시}市 {구}區 {동}洞 {번지}番地 {거주}居住 {보체}保體 {시회대중}示會大衆 {청신사}淸信士 {청신녀}淸信女 {동남}童男{동녀}童女 {백의단월}白衣檀越 {각각등보체}各各等保體 {이차인연공덕}以此因緣功德 {앙몽제불보살}仰蒙諸佛菩薩 {가피지묘력}加被之妙力 {일일유천상지경}日日有千祥之慶 {시시무백해지재}時時無百害之災 {일체재화}一切災禍 {일체마장}一切魔障 {영위소멸}永爲消滅 {사대강건}四大强健 {육근청정}六根淸淨 {신강철석}身强鐵石 {심약태}心若泰{산}山 {자손창성}子孫昌盛 {무병장수}無病長壽 {재수대통}財數大通 {사업번창}事業繁昌 {가내화합}家內和合 {안과}安過{태평}太平 {수산고흘}壽山高屹 {복해왕양}福海汪洋 {각기심중}各其心中 {소구소원}所求所願 {여의원만}如意圓滿 {형통대원}亨通之大願

{동참재자}同參齋者 {각각등보체}各各等保體 {불법문중}佛法門中 {신심견고}信心堅固 {영불퇴전}永不退轉 {발}發{아뇩다라삼먁삼보리지대원}阿多羅三三菩提之大願

{동참재자}同參齋者 {각각등복위}各各等伏爲 {각상서선망부모}各上逝先亡父母 {각열위열명영가}各列位列名靈駕 {이차인연공덕}以此因緣功德 {왕생극락세계}往生極樂世界 {상품상생지대원}上品上生之大願

{연후원}然後願 {항사법계}恒沙法界 {무량불자등}無量佛子等 {동유화장장엄해}同遊華藏莊嚴海 {동입보리대도량}同入菩提大道場 {상봉화엄불보살}常逢華嚴佛菩薩 {항몽제불대광명}恒蒙諸佛大光明 {소멸무량중죄}消滅無量衆罪{장}障 {획득무량대지혜}獲得無量大智慧 {돈성무상최정각}頓成無上最正覺 {광도법계제중생}廣度法界諸衆生 {이보제불막대은}以報諸佛莫大恩 {세세상행보살도}世世常行菩薩道 {구경원성살바야}究竟圓成薩婆若 {마하반야바라밀}摩訶般若婆羅蜜

{나무석가모니불}南無釋迦牟尼佛 {나무석가모니불}南無釋迦牟尼佛 {나무}南無{시아본사}是我本師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

역문

○축원(소원을 빎)
우러러 사뢰옵나니, 제석천의 보주가 서로 비취듯 온누리에 항상 계신 다함없는 삼보님, 자비로운 어른이시여, 자비를 버리지 마옵시고 밝은 지혜를 (끊임없이) 드리워 주옵소서. 지금까지 닦은 한량없는 공덕을 세 가지 목적(중생회향, 보리회향, 실제회향)에 돌리오니 모두 원만히 이루어지이다.

사바세계 청정하고 물 맑은 도량 사에서 오늘 지극한 정성으로 공양하며 발원하는 재자 거주 보체와 시회대중 청신사 청신녀 동남 동녀 백의단월 불자들이 이 인연공덕으로 제불보살님의 가피지묘력을 입어, 매일 매일 천 가지 경사만 있사옵고 어느 때건 해로운 백 가지 재앙은 없사와, 일체 재화와 마장이 영원히 소멸되고, 사대가 강건하고 육근이 청정하여 철석 같은 몸이 되고 태산 같은 마음 되어, 자손은 번성하고 병 없이 오래 살며, 재수는 대통하여 사업이 번창하고, 집안이 화목하며 편안한 삶을 살고, 수명은 태산 같이 높아지고 복은 바다처럼 넓어지며, 마음속에 구하고 바라는 모든 일이 뜻대로 원만히 이루어지이다.

동참 재자 모두 부처님 집안에서 신심이 견고하여 영원히 물러나지 아니하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하여지이다.

동참 재자들의 먼저 돌아가신 각 부모님들을 비롯한 모든 영가들이 이 인연공덕으로 극락세계에 가서 상품에 태어나지이다.

그런 연후에 항하강 모래수와 같이 많은 온 법계의 한량없는 불자들이 꽃으로 장엄된 화장세계에 머물며 깨달음의 도량에 들어가 항상 화엄세계의 불보살님들을 만나뵙고, 늘 모든 부처님의 크신 광명을 입어 많은 죄업 소멸되고, 한량없는 큰 지혜를 이룩하여,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몰록 이루어, 널리 법계의 모든 중생 제도하여 부처님의 크신 은혜 갚기 원하오며, 세상에 날 때마다 항상 보살도를 행하여 마침내 일체지를 원만히 이루어 큰 지혜로 저 언덕에 이르게 하여지이다.

석가모니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우리들의 본사 석가모니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진행

축원은 법주가 혼자서 낭독을 하면 된다. 법주가 축원을 하는 동안 바라지는 목탁을 세 번 내려 동참재자들이 삼배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재자들은 축원이 전부 끝날 때까지 절을 하는 것이 좋고 동참불공이라서 축원문이 많아 계속 절하기 어려울 때는 가만히 앉아서 다른 이의 축원이 다 끝날 때까지 명상을 하도록 하고 마지막 영가축원을 할 때는 모두가 함께 일어나서 절을 하면 된다.

해설

축원은 발원(發願)의 한 형태이다. 발원은 부처님에 대한 찬탄, 자신의 업장 참회, 발원, 공덕 회향의 모양을 갖춰야 한다.

발원의 내용은 첫째 헌공재자의 몸과 마음이 건강하기를 발원하고, 둘째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에 있어서 일체의 액난을 소멸하기를 발원하고, 셋째 자신에 맞는 수행방법으로 깨달음을 얻고 소원하는 것을 성취하고, 넷째 자신의 뿌리인 일체 선망조상에 대한 왕생극락과 무생법인을 얻어 해탈하기를 발원하고, 마지막으로 지은 공덕을 일체 중생과 온 법계에 회향하여 나의 공덕을 전체의 공덕으로 돌려 공덕을 확대하는 큰 발원을 하여 결국에는 일체 소원을 성취코자 하는 것이다.

허수낭감에서 ‘낭감’은 밝은 거울을 말한다. 여기서는 밝은 지혜를 비유하여 ‘끊임없이 밝은 지혜를 드리워 주옵소서’라는 것이다.

공덕해는 공덕의 광대함을 바다에 비유한 것이다. 자신이 쌓은 공덕이지만 삼보의 자비하심 가운데 쌓은 것이기 때문에 공덕해라고 하였다.

회향삼처란 자신이 닦은 공덕을 회향하는 세 가지 목적을 말한다. 첫째는 중생회향으로 자기가 지은 선근공덕을 다른 중생에게 회향하여 공덕 이익을 주려는 것으로, 불·보살의 회향과 세속에서 영가를 천도하기 위해 독경하는 것 등이다. 둘째는 보리회향으로 자기가 지은 온갖 선근을 회향하여 깨달음을 얻으려는 것이다. 셋째는 실제회향으로 자기가 닦은 선근 공덕을 무위적정(無爲寂靜)한 열반을 얻으려는 것이다.

수월도량이란 하나의 달이 모든 물에 평등하게 비치듯, 모든 존재는 각기 절대평등하기 때문이 이 현실 세계가 부처님의 진실한 도량임을 말하는 것이다.

연후원에서 ‘세세상행보살도 구경원성살바야 마하반야바라밀’은 ‘세상에 날 때마다 항상 보살도를 행하여 마침내 일체지를 원만히 이루어 큰 지혜로 저 언덕에 이르게 하여지이다’이다. 모든 불공과 기도의 목적은 깨달음이다. 마하는 큰, 위대한의 뜻이며, 반야는 분별을 떠나 진리를 직관하는 깨달음의 지혜이며, 바라밀은 저 언덕에 이른 상태, 완성이라는 뜻이다.

축원의 마지막에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시아본사 석가모니불’한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사바세계 중생과 가장 인연이 깊으시므로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피력(加被力)으로 소원이 성취되기를 발원하며 거듭 귀의를 확인하는 것이다.

발원은 자신이 직접 부처님이나 보살님 앞에서 소원을 말하는 것이고, 축원은 의식을 집전하는 스님이 불공을 올리는 신도를 대신하여 부처님께 발원을 올려주는 것이다.

세속에 사는 이들은 여러 가지 세파에 시달려 부처님의 말씀대로 수행하는 힘이 부족한 상태이므로, 몸과 마음을 모아 수행한 법력이 있는 스님을 통하여 불공을 드리고 발원하는 형태를 취하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