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내음의 보금자리/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백년을 두고 경문을 읽어보라, 도를 깨달을 수 있나!

향내음(蕙巖) 2010. 8. 26. 09:11

백년을 두고 경문을 읽어보라, 도를 깨달을 수 있나!

 

백년찬고지(百年鑽古紙)
진리는 언어문자를 떠나 있어

중국 백장선사(百丈禪師)의 법을 이어받은 수행자중에 고령에 신찬(神贊)이라는 분이 있었다. 그는 전생의 인연 따라 일찌기 어렸을 때, 북주에 있는 고령사의 산문을 두두려 계현(戒賢)대사로부터 삭발하고 수계하여 승려가 되었다.

계현대사는 지혜총명하였으나 일찍부터 참선공부에는 흥미가 없고 오직 부처님의 말씀인 경학(經學)에만 전념한 분으로써, 대강사로 이름을 떨치는 분이었다. 계현대사는 제자 신찬에게 기대하는 것은 경학을 열심히 공부하여 자신을 능가하는 경학자요, 대강사가 되는 것이었다. 계현대사는 일찍부터 초발심의 신찬에게 오직 경학만을 가르쳤다. 천부적으로 지혜총명한 신찬은 경학을 열심히 공부하더니 오래지 않아 오히려 스승을 능가하는 훌륭한 경학자가 되었다. 그러나 신찬은 경학을 깊이 연구하면 할 수록 마음은 허전해지고 사량분별만 늘 뿐, ‘이것이다!’하는 깨달음이 오지 않았다.

마음이 답답한 신찬은 어느날 우연히 참선문(參禪門)에 관한 서책을 접하고 가슴에 범종소리처럼 느껴오는 것이 있었다. 그는 더욱 참선공부에 관한 서책을 구해 읽고서야 비로서 암흑속에서 희미한 불빛을 만난 마음이 되었다.
신찬은 스승에게 나아가 자신의 심경을 말씀드리고 선방(禪房)으로 가서 부처님이 보리수하에서 정좌하여 진리를 구하기 위하여 수행하듯, 실참실수((實參實修)하고져 한다고 포부를 말했다. 계현대사는 제자가 자신처럼 경학에만 몰두하지 않으려는 것을 알고 실망하여 냉연부답(冷然不答)이었다.

그러나 신찬은 하직의 큰 절을 올리고 참선공부의 길로 나섰다. 신찬은 당시 크게 선풍을 드날리고 있는 백장선사를 찾아갔다.
백장선사의 문하에서 신찬은 지도편달을 받으며 수년간을 불철주야 뼈를 깎는 참선공부를 하더니 마침내 어느날 신찬은 섬광과 같이 견성오도(見性悟道)를 하였고, 백장선사로부터 선문답을 통해 당당히 인가를 받았다. 깨달음을 얻은 신찬은 이 세상 누구보다도 자신을 처음 삭발위승하게 해준 고마운 은사 계현대사의 은혜에 감사하고, 스승이 그리워 걸망을 챙겨 고령산으로, 고령산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스승앞에 가사장삼을 수하고 넙죽 큰 절을 올리는 제자를 보고 정좌하여 절을 받는 계현대사는 못마땅한 얼굴로 힐문하듯 말했다.
 “ 너는 나를 버리고서 여러해 동안 소식없이 돌아다니는 것 같더니 그동안 무슨 소득이라도 있는 거냐? ”
“ 아무것도 얻은 바가 없습니다.”
“ 쳇, 그러면 그렇지. 부처님 말씀인 경학 외에 달리 배울 게 있나?! 허송세월 했구먼. 진즉 내 말을 들었어야지. ”
계현대사는 자신의 가르침을 듣지 않고 허송세월을 하고 돌아온 제자가 미워서 일부러 크게 꾸짖고 천한 일을 하도록 명했다.

법당은 좋으나 부처가 영험이 없도다

어느날 스승은 신찬에게 목욕물을 데우게 하고, 등의 때를 밀라고 하였다. 신찬은 스승이 시키는대로 스승의 등의 때를 밀다가 혼잣소리로 “ 법당은 좋은데 부처가 영험이 없도다(好好法堂, 佛無靈驗!)라고 중얼거렸다. 이 말을 들은 스승은 괴이하게 여겨 뒤를 돌아보았다. 신찬의 또 “부처가 영험은 없으나 방광은 할 줄 알도다. (佛無靈驗 有放光”라고 거리낌없이 중얼 거렸다. 계현대사의 가슴에 선뜻 와 닿는 느낌이 들고 제자가 보통인물이 아닌 것 같다고 막연히 집작했다.

그 후 몇일이 지나 계현대사가 방안에서 열심히 불경을 읽고 있는데 난데없이 어디서 벌 한 마리가 날아 들어와서 열어놓은 창문으로 나가지 않고 닫혀있는 창문으로 나가려고 두터운 창호지에 탕탕 몸을 부딪치며 무진 애를 쓰고 있었다. 이 광경을 본 신찬은 비유해서 게송을 지어 마치 스승에게 들으라는 듯이 낭낭히 읊어 나갔다.

아― 어리석은 벌이여!
활짝 열어 놓은 저 문은
어이하여 마다 하고
굳게 닫힌 창문만을
안타까이 두두리는가?
백년을 쉬임없이
경서를 뚫어지게 본들
아― 어느 날
어느 때에
깨치기를 기약하겠는가?
(空門不肯出 投窓也大痴 百年鑽古紙 何日出頭期)

이 게송을 읊는 소리를 들은 스승은 보던 경서를 경탁 위에 덮고서는 놀라운 눈빛으로 제자를 묵묵히 바라보더니
 “ 나는 네가 나가서 허송세월을 하고 돌아온 줄 알았더니 그렇지 않은가 보구나! 그동안 누구에게서 어떤 법을 배웠느냐? ”
 “스님! 그동안 무례한 말씀 드려 죄송합니다. 실은 저는 백장선사 법좌에서 불법의 요지를 깨닫고 돌아왔습니다만, 스님께서는 아직도 참 공부에는 뜻이 없고, 여전히 경서의 문자에만 골몰하신 것을 보고 안타까웠습니다. 제가 직접 참선공부를 권하여도 들으실 리가 없어 그동안 버릇없는 말씀을 누차 드려서 참다운 발심을 촉구 하였던 것이니 용서하여 주십시요.”
 “ 오―, 기특한 일이로다. 네가 비록 내상좌이나 공부로서는 나의 스승이니 지금부터 나를 위해 백장선사를 대신하여 백장선사의 법어를 들려다오!”
스승은 대중에게 설법상을 준비하도록 하고 대중의 맨 앞에서 옷깃을 정제하고 제자의 설법을 기다렸다.
설법상에 오른 신찬은 위의(威儀)도 당당하게 소리를 높여 백장선사가 제창한 바로 그 진풍(眞風)을 그대로 보여주며 이렇게 외쳤다.

“백장선사께서 수시(垂示)하시되― 영광(靈光)이 홀로 빛나서 근진(根塵: 眼耳鼻舌身意와 色聲香味觸法)을 형탈(逈脫)하여 체로진상(體露眞常)하여 문자에 걸림이 없도다! 심성(心性)은 물듬이 없어서 본래 스스로 원만히 이루어졌으니 자못 망연(妄緣)만 여의면 곧 여여불(如如佛: 부처) 이니라!”

숙연히 경청하던 계현대사는 언하에 감오(感悟)하고 진정한 깨달음은 언어문자에 있지 않다는 것을 확신하였다.
아! 우리 한국불교계에도 틀만 근사한 즉 법당만 좋을 뿐 영험이 없는 승려, 즉 깨달음이 없는 승려가 얼마나 많은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