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행복을 희구합니다. 참으로 소중한 것이 행복이기에 모두들 희구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행복의 양이 적으면 나 혼자 쓰기에도 모자랍니다. 복이 많아야만 나도 행복을 누리고, 사랑하는
가족이나 남들에게도 나누어 주고 베풀어 줄 수 있습니다.
세상에 가난하고 불행하기를 바라는 이가 어디 있겠습니까? 모두가 복이 많은 사람이 되기를 원할 것입니다.
항상 복이 넘치고 풍족한 부자였으면 할 것입니다. 그런데 복이 넘치거나 풍족한 사람은 참으로 드뭅니다.
왜? 가슴을 닫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빗장을 걸어 잠그고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정말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고 풍족한 사람이 되고 싶다면 마음의 문에 꽂은 빗장부터 풀고 살아야 합니다.
가슴을 활짝 열고 살아야 합니다 털끝 하나 남김이 없이 가슴을 활짝 열어보십시오. 여태까지 그 가슴속에
무엇을 담았던 상관하지 말고, 가슴을 활짝 열어 받아들일 준비를 하십시오.
어떻게, 무엇을 담아야만, 가족이나 이웃에게 베풀고 또 베풀어도 부족함이 없고 당당하면서도 보배로운
행복의 힘을 이룰 수 있을까? 이제 그 방법 중의 하나인 기도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우리 불자들은 기도를 많이 합니다. 왜 기도를 많이 하는가? 여러 가지 까닭이 있겠지만 대부분은 행복과
성취를 위한 것입니다. 나쁜 일들이 다 사라지고 뜻과 같이 성취되어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선 기도를 하면 불보살님과 신중이 지켜 주기 때문에 삼재팔난 등이쉽게 접근할 수 가 없습니다.
삼재팔난은 수재, 화재, 풍재의 세 가지큰 재앙에다가, 가난.질병.굶주림.전쟁.파산.감옥살이.검난귀난
들의 힘든 일을 당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삼재팔난 등의 재앙이 없어보십시오. 이 세상이 어떻겠습니까? 결코 고해라고 칭 할 수 없을것
입니다. 오리려 정말 살만한 세상이 될 것입니다.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장애가 없다면 늘 즐겁고 행복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삼재팔난만이 아니라 많고 많은 장애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장애들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장애들에 대해 싫다하고, 오지 마라고
하기 전에 이와 같는장애들이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는지를 먼저 생각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오늘의 삼재와 팔난은 어제까지 지은 조심스럽지 못한 행위들, 거북스러운 일이든, 삼재팔난이 될 수 밖에
없는 일들을 저질렀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입니다. 삼배팔난을 받을 만한 씨앗을 뿌린 일이 없는 사람은
삼재팔난이 다가오지 않습니다. 왜? 원인을 짓지 않았기 때문에.
예를 들어 봅시다. 삼재는 띠별로 12년 만에 한 번씩 찾아와 3년 이어진다고 하며, 모든 사람에게 이 삼재는
반드시 찾아 든다고 합니다. 그런데 주위를 살펴보시오. 그 해 삼재에 처한 많은 사람 중 어떤 사람은 삼재와
전혀 무관하게 잘 사는데, 일부의 사람들은 잘 풀리지 않을 뿐더러 큰 시련이나 실패 등의 소난에 처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경우 잘 안 풀리는 이들은 생각합니다.
'올해 삼재라고 하더니 역시 이렇게 힘이 드는구나.' 또 현재 문제가 없는 사람인데도 힘든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는 지레 두려워합니다. '나도삼재다. 나도 당하지않을까?' 하지만 염려하지 마십시오.
공연한 불안에 빠져들지 마십시오. 내가 원인을 짓지 않았으면 고난의 삼재가 범접할 수 없습니다.
당당하게 사십시오. 저지르지 않았는데 당당하지 못할 까닭이 있겠습니까? 만약 불안하다면 기도를 하십시오.
'잘 지켜주십사'하면서 신중기도를 하거나, 관음기도.지장기도.약사기도.광명진언기도.신묘장구대다라니기도
등 어떠한 기도라도 좋습니다. 그런데 이 기도를 할 때 어떠한 자세로 해야 하는가? 여기서는 신중기도와
관음기도를 예로 들어 유념할 사항들을 짚고자 하며, 먼저 신중기도부터 이야기 하겠습니다
신중기도를 할 때
우리나라에서는 신중기도를 할 때 '화엄성중'을 염하거나 "화엄경약찬게"를 즐겨 읽습니다.
신중기도 때 '화엄성중'을 외우는 까닭은 우리나라 법당에 모시는 신중탱화 속의 신장이 "화엄경"에 등장하는
각종 신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집금강신.제석.범천을 비롯하여 팔부신중과 도량신 등의 39위 신장들을
일일이 열거할 수 없어 '화엄성중'을 부르며 가피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용수보살께서 지었다는 "화엄경약찬게속에는 이 39위 신장은 물론이요, 대표적인 불보살님의 이름,
선재동자가 친견한 53명 선지식의 이름, 화엄경 39품의 명칭들이 모두 나열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단순히
'화엄성중'만을 명하지 말고, "화엄경약찬게"를 꼭 함께 읽을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화엄경챡찬게"를 읽으면서
그분들의 이름을 낱낱이 불러 주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스님이 불공을 올리고 축원을 하면서 내 이름이나 내 가족의 이름을 불러 줄 때를 생각해보십시오.
내 이름이나 내 가족의 이름이 들려오면 얼마나 즐겁습니까? 내 이름이 들리지 않을 때는멍하게 있다가도,
이름이 들리면 '아, 내 이름이 나오네' 하면서, 합장을 하거나 일어나서 절을 하기도 합니다.
신장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약찬게를 외우며 이름을 불러주면 이름을 들은 그분들이 무심하게 있지 않습니다.
'저분이 내 이름을 외울 때는 분명한 까닭이 있다. 왜 나의 이름을 부르는가?'
이렇게 생각하고 반응을 보입니다. 하지만 형식적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정성스럽게 읽어야 합니다.
정성스럽게 이름을 부르면 도와주지만, 무성의하게 이름을 부르면 돌아보지 않습니다. 이는 마치 사람들에게
정성껏 도움을 청하는 것과 무성의하게 도와 달라고 하였을 때 돌아오는 반응과도 같습니다. 그 반응이 그야말로
하늘과 땅의 차이이듯이, 정성과 무성의에 대한 신장들의 반응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신중기도를 할 때에는 하루에 한 번 만이라도 약찬게를 정성껏 읽으십시오. 신장들이 정말 잘 지켜줍니다.
나아가 신장들이 지키고 있는데 삼재팔난이 들어올 수 있겠습니까? 삼재팔난은 들어오고 싶어도 감히 접근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 중에는좋지 않은 일이 닥치면 기도는커녕, '왜 나에게 이런 일이!' 하면서 실망을
하여 하던 일을 놓아버리고 술로 하루하루를 지새우거나 무기력하게 사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살면
더욱 힘들어지고 비참해집니다. 나를 지켜주던 마지막 신들까지 온통 떠나가 버립니다. 그러므로 좋지 않은
일들이 생겨나는 바로 이때에 자세를 바꾸어야 합니다.
나에게 삼배팔난이 접근 하게 된 까닭이 무엇인지를 살펴 참회기도를 하면서 생활태도를 바꾸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를 하면 얼마든지 고난을 물리치고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성의를 다하여 "화엄경약찬게"등을 외우며
기도하면 신장들이 반드시 지켜줍니다. 물론 우리를 지키던 신장들도 부득이하게 나를 떠날 때가 있습니다.
어려움이 찾아오더라도 걱정을 하거나 당혹해하지 말고 성의를 다해 살고, 성의를 다해 기도 하는 것. 이것이
삼재팔난 들의 고난을 극복하는 최상의 방법입니다. 성의를 다하면 못 벗어날 고난이란 없습니다. 오히려 성의가
없을 때가 문제입니다. 성의가 없으면 이루어지는 것 또한 없습니다.
우리의 바라고 원하는 희구하는 생각이 간절하게 되면 재난이 물러서게 되고, 재난이 물러서면 행복이 그자리를
차지합니다. 그래도 불안하고, '삼재팔난 등의 고난에 휩싸이지 않을까' 염려된다면 "화엄경약찬게"를 하루
한 번씩만이라도 꼭 외우십시오. 신중의 가피, 화엄경의 위신력으로 어떠한 문제도 생겨나지 않습니다.
관음기도로 소원성취를
그리고 나는 고난극복과 함께 뚜렷한 원을 성취하고자 하는 불자들에게 '괴오움을 뿌리 뽑고 행복을 주십사'하는
발고여락의 관음기도를 즐겨권합니다. 우리나라 불자들이 가장 많이 하는 기도는 관음기도인데, 나는 관음기도를
하는 사람들에게 '관세음보살' 염불만 하지 말고,"관음경"이라고도 하는 "관세음보살보문품"을 자주 읽으면서
염불을 할 것을 권합니다. 적어도 하루에 한번은 "관음경"을 읽은 다믐에 관음염불을 하라고 합니다.
왜냐? 관세음보살이 어떠한 분이며, 관음기도를 하면 어떻게 되는가가 "관음경" 속에 다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곧 관세음보살이 어떠한 분이고 관음기도를 하면 어떻게 되는가를 확고히 알게 되면 깊은 믿음속에서 기도를 할 수
있게 되고, 깊은 믿음으로 기도를 하면 그만큼 성취가 빨라지게끔 되어 있는 것이 원리이기 때문입니다. 이 원리는
다른 기도에도 그대로 적용시킬 수 있습니다. 지장기도를하는 분은 지장경을 외우면서 지장염불을, 약사기도를
하는 이는 약사경을 외우면서 약사염불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서 나는 늘 부탁합니다.
"하고 있는 염불과 관련된 경전을 정성껏 자꾸 읽어라. 음식을 오래 씹을수록 맛이 나듯, 자꾸 읽게 되면 깊은
믿음이 생겨나고 간절함이 생겨난다."
간절한 믿음. 이것이 가장 보배로운 것입니다. 믿음이 간절하면 해결하지 못할 원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 간절한
믿음을 넓게 펼쳐, 보고 듣는 모든 존재와 모든 것에서 관세음보살을 느껴보십시오. 나만 편안한 것이 아니라
가족 전체와 이웃이 편안해집니다. 나아가 지구촌 전체가 편안해집니다. 오늘날 이 사회에는 못된 생각들이 많이
차 있습니다. 서로 불신하고 시기하고, 상대방을 헐뜯습니다 노력은 하지 않으면서 '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며
회의에 빠지기도 합니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요? 남 때문이 아닙니다.
'내 뜻이 약하고 내 욕구가 지나치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 탓'으로, 결국에는 나도 이루지 못하고 이웃도 이루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이것의 결과는 파괴 밖에 없습니다. 나는 '내 뜻이 약하고 내 욕구가 지나치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이 제일 위험한 경우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제 유행가의 가사에서 처럼 과거는 묻지 마세요!' 과거의
내가 어떠하였든, 오늘 새롭게 출발을 하리라' 다비하면서 관음경을 독송하고 관음염불을 하십시오.
관음기도의 시작은 관세음보살님께 보증을 서줄 것을 약속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관세음보살님께 내 속에 있는 뜻을
말씀드리면, 관세음보살님께서는 우리를 관찰하면서 함께해주십니다.
선남자여, 만약 백천만억의 한량없는 중생이 여러 가지 괴로움을 받게 되었을 때 '관세음보살'이라는 이름을 듣고
일심으로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부르면, 관세음보살은 즉시에 그 음성을 관하여 모두에게 해탈을 얻을수 있게
하느니라. 관세음보살님은 절대로 이 말씀을 등지지 않습니다. '일심으로 외우면 즉시에 나의 음성을 관하여 해탈을
얻게한다'는 것을 꼭 믿고 깊이 새겨야 합니다. 불보살님은 방편으로라도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다만 내가
노력을 어느 정도 하는가에 달려 있을 뿐.
관세음보살님이 계신 곳의 문은 '보문'입니다. 특정한 이들만 사용하고 드나드는 문이 아니라 누구든지 드나들 수
있는 문입니다. 그 문으로 들어서면 차별 없이 누구나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또한 보문은 조금 열려 있는 문이
아닙니다. 활짝 열려 있는 문입니다. 일정한 시간에만 들어갈 수 있는 문이 아니라, 언제든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문입니다. 꾸준하게만 관음기도를 하십시오. 틀림없이 이 문으로 들어서서 큰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기도인에게 드리는 세가지 방법
첫째, 기도하는 우리는 자꾸 돌이킬 줄 알아야합니다. 돌이켜 보는 것이 가장 큰 농사입니다. 처음과 끝 그리고
지금의 내 생각을 돌이켜 보는 것. 이것을 반관이라 합니다. 돌이켜 살펴보는 것이 건전하고 잘 되면 조금도 하자
없이 공덕을 성취하게 됩니다. 그럼 어떤 건전한 마음으로 돌이켜 보아야 하는가? 자애로운 마음으로 돌아보아야
합니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참고, 상대방이 거북스러운 자세로 나오더라도 어느 정도 참으면서,
'나는 광대원만무애대비심을 가진 부처님과 관세음보살의 제자다'라는 생각을 앞세워야 합니다.
그리하여 상대방의 언짢은 자세를 자비심이라는 원만한 생각으로 거두어주어야 합니다. 상대방이 성을 내더라도
정성스러운 태도로 '일이 되게끔 다시 한 번 생각해 봅시다' 하며 다독거려 보십시오. 이렇게 자애롭고 부드러운
태도를 취하면서 우는 아기 달래듯이 하면 결국은 함께 성공의 길로 나아가게 되고, 부처님의 제자로서 조금도
부끄럽지 않는 길을 밟게 됩니다.
둘째, 필요할 경우 가족과 함께 힘을 모아라는 것입니다.
기도를 할 때에는 불보살님께 간절한 나의 뜻과 생각을 전하는 전파를 던져야 합니다. 이 우주공간에 가득하신
불보살님을 향하여 어느 정도의 전파를 던지느냐가 기도성취의 관건입니다. 늘 나의 정성을 다하여, 간절한 원을
바치면 금방 그전파는 전달됩니다. 그런데 이 원에는 나 혼자의 능력, 나 혼자의 기도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있는가
하면, 혼자만의 능력으로는 힘든 것이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가족들이 함께 기도를 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아들에게 큰 일이 있을 겨우, 아버지와 어머니가 아들의 원성취를 위해 기도하면서 전파를 발사해주어야 합니다.
아들이 보내는 전파에 아버지와 어머니의 전파가 함께 더해지는데 어찌 그 힘이 커지지 않겠습니까? 자연 기도의
성취도 보다 쉽게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가족 좋은 것이 무엇입니까? 서로 위로하고 함께도우며 서로를 살려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보면 부모는
자식을 위해 기도해도, 자식은 부모를 위해 기도를 하는 경우가 드뭅니다. 그러나 부모를 위해 기도하는 자식이
될 때 스스로도 더 잘풀리게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자기 자식은 열심히 돌보면서 부모를 돌아볼 줄 모르는 사람이 되면 그만큼 좁은 사람입니다. 그릇이 작으면 많이
담을 수 있습니까? 당연히 없습니다. 불보살님이 아무리 큰 행복을 주려하여도 결코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큰 행복을 누리고자 하면 큰그릇이 되어야 합니다. 나와 내 자식에서 내 부모로 확대하고, 내 형제 내 이웃으로
마음을 여는 사람이 되어야, 기도도 참되고 받게 되는 복락도 커지게 되는 것입니다.
가족을 위해 서로 성실하고 진실하게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가슴을 활짝 열어 새롭게 정돈하고 진실한 힘을
쌓으십시오. 그리고 스스로에게 힘이 생겨나고 갖추어지기 시작하면 혼자만을 위해 그 힘을 쓰려고 하지 마십시오.
혼자만을 쓰기 위해 꾹 가두어 두면 썩게 됩니다. 가두어 둔 물이 썩듯이. 그러므로 힘이 생기게 되면 사방을
돌아보고 그 힘을 필요한 곳에 베풀어 주어야 합니다. 농사를 잘 지었으니 밥도 짓고 떡도 하여 함께 나누어
먹을 일입니다
셋째는 기도 할 때 속효심을 내지말로 요행을 바라지 말라는 것입니다.
속효심이 무엇인가? 밥 한 숟가락 먹고 배부르기를 바라는 마음이 속효심입니다. 잠깐 자고 피로가 푹 풀리기를
바라는 마음이 속효심입니다. 속히 효과를 보았으면 하는 것이 속효심인 것입니다. 그러나 배가 부르려면 먹을
만큼 먹어야 합니다. 잠도 잘 만큼 푹 자야 피로가 완전히 풀립니다. 속히 되기를 바라지 말고 배부르다고
느낄 때까지, 피로가 말끔히 가시었다고 느낄 때까지 기도를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여 기도가 완전히 익게 되면, 뿌리를 강하게 내린 나무처럼 큰 가뭄에도 말라죽지 않고 모진 비바람에도
온전히 견뎌 푸르름을 더하게 됩니다. 불자들이여, 오늘 부터 어떻게든 불보살님의 품 안에서 살아보십시오.
만약 관음행자라면 관세음보살의 품안에서 살아보십시오. 그리고 관음경 속의 여러 가지 베푸는 힘 중에서 하나를
나의 것으로 만들 수는 없을까를 생각해보고 한 가지라도 가져보고자 노력해 보십시오.
그리하여 마침내는 '내가 관세음보살이 되어 보겠다'는 대원을 가져보십시오. 이렇게 하면 정말 기도성취가
가까워지고 새로운 세상이 전개됩니다. 불보살님의 대자비는 햇빛과 같아서 뜻있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골고루 비추어주고, 바다와 같아서 함께 하고자 하면 모두 포용합니다. 불보살님은 다생가겁동안 어떠한
고행난행도 마다하지 않고 견뎌내어, 마침내 이와 같은 대자비의 힘을 성취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요행을
바라지 말고 마땅히 내가 해야 할 일을 내가 하면서 진심으로 정성껏 기도하십시오. 그렇게만 하면 불보살님은
반드시 우리를 행복의 자리에 앉을 수 있게 해주십니다.
하지만 뒷짐을 진채 속효심을 품고 요행을 바라면서 기도를 하게 되면 절대로 성취 되지 않습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하지 않고 뒷짐을 진 채 요행을 바라면서 기도를 하는 것은 '깨진 독에 물 채우 주세요'하는 것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우리는 위대한 스승인 부처님과 대자대비 그 자체인 대보살님들을 닮고자 하는 기도인이지
않습니까!
부디 불보살님의 명호를 염불하고, 관련 경전을 독경하고 사경하면서, 늘 우리의 뜻과 원을 점검하고 정돈하며
당당하게 걸어가십시오. 당당히 걷다보면 큰 행복이 쌓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르게 되니, 그곳이 곧 행복과
자재의 땅인 피안이요 불국토인 것입니다.
나무대자대비관세음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