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면 어떻게 하겠단 말인가.
또한 모른들 어떠하랴.
참의 운명이라면
알고 모른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진다 말인가.
운명을 예언한다고 해서
족집게 모양 꼭 집어낸다고 해서
변하고 다르고 하다면
그것을 어떻게 참의 운명이라고 하겠는가.
말장난이지,
운명이라는 것은 결국
어떠한 환상이나 예언적 추리를 이미지화하면서
나타내는 말인데
그러한 말에 쫓아다니다간 허덕임만 있을 따름이다.
누구나 운명이라는 말에는 약하다.
또한
인간이 살면서 제일 궁금한 것이
출세를 했건
부자가 되었건
성인聖人이 되었건
이 운명이라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성인은 운명을 아는 사람이 아니다.
신의 아들이라고 자처하는 예수도
죽음의 십자가에 매달렸을 때에는
<신이여-! 왜 나를 버리시나이까.>하고 울부짖지 않았던가.
그는 초연하지도 못했다.
운명을 점치지 말라고 하는 나나
운명에 걸리지 말라고 하는 선각자나
모두다 운명은 궁금하고
그에 대한 궁금증은 떨치지 못한다.
문제는 운명을 점친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지는가에 있다.
혹자는 말할 것이다.
내가 확실하게만 알면
오른쪽으로 갈 것을 왼쪽으로 가고,
왼쪽으로 갈 길을 오른쪽으로 가서
그 재난을 비켜가고 피해서 막았을 터인데,
그리고 그곳으로만 갔으면
횡재를 했을 터인데,
지나고 나서 뒤돌아보면
후회하고 아쉬운 점이 한두 개뿐이 아닐 것이다.
또한, 내가 이 순간에 틀림없이 죽을 줄만 알면
그래서 그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만 알면
죽음을 대비한 모든 내 인생을 깔끔하게 정리해 놓을 터인데,
이러한 것들이 무엇을 달라지게 만든다는 것인가.
오직 자기의 욕심을 죽는 순간까지 초연하지 못하고
부둥켜안고 허덕인 것뿐이다.
그래도 우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운명을 점친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운명을 점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운명을
아는 자와 모르는 자의 차이가 있느냐. 하면
없다.
대개 요새 운명을 점치는 사람들을 보면
조상
비명횡사
원한 등등의 이야기를 들먹이며 상대를 겁주지만
이것은 거위가
누구도 모르는 일이다.
자기도 모르고 남도 모르는 것을
꼬집어 내어서 이렇다저렇다 하면
그런가. 하는 가상적인 추상일 뿐이다.
정해진 것은
형상을 갖고 태어난 자는
언젠가는 소멸하고 만다는
불변의 원칙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불교는 태어남도 없고
죽음도 없다고 하지만
그 또한 역시 원칙을 말할 따름이다.
그 원칙에 있어서는
무엇하나 더함도 덜 함도 없기 때문이다.
고금을 통해 성숙한 인간들이 있다.
가면 가는 대로
오면 오는 대로
스스로 받아들이고 허덕이지 않으며
전력을 다하고
성심을 다할 따름이다.
오직 삶의 과정에서 막막할 때가 있다.
어떻게 해야 좋을까.
이렇게 해야 하나, 저렇게 해야 하나,
하긴 해야 할 터인데
어떤 것을 선택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막연할 때가 있다.
그럴 때에는 연필 굴리기나 동전 던지기를 하라.
그렇게 해서 선택하는 방법도 하나의 방법이다.
그 대신 절대 후회하거나 집착하지 마라.
그러한 심정으로
점은 치는 것은 삶의 지혜에 속한다.
그러나
동전 던지기나 점치는 거나 하나도 다름이 없음을 알아야 한다.
뉴욕의 빌딩이 폭파될 것이라고 예언한 사람이 있다.
그렇다고 그것을 막은 것은 아니다.
예언이란 그런 것이다.
가능성,
어떠한 순간에 스치고 지나가는 환상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우리가 그 환상을 일일이 조차 다니며 허덕일 수도 없다.
정월이 되면 서울 조계사 앞 불구점이나
인사동 골목 찻집에 가면
그래도 한국에서 굴지의 점쟁이들
즉, 예언자들이 모여서 한마디씩을 한다.
올해에는 무슨 운이 들어와 ××가 죽을 것이라든가
세계적으로 큰 재난의 조짐이 보인다든가
그 시대의 유명인들을 손꼽아가며
때와 시까지 말하며 한마디씩 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그러다 안 맞으면,
꼭 그럴 운이었는데
누구누구의 덕에
그, 치고 들어오는 치명적인 악운을 막아주었다. 한다.
형상 있는 것은
소멸하게 되어 있다.
그 사이에 비바람도 치고 어둠을 헤매며 방황할 때도 있다.
그 자연의 현상과
그 인간의 굴곡의 과정은 그 누구도 피해간 자가 없다.
괴로울 때에는 괴로워하라.
기쁠 때에는 기뻐하라.
세상은 내 마음대로 안 된다.
왜냐하면,
내 마음도 내 마음대로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누가 내 마음대로 된단 말인가.
오면 오는 대로
가면 가는 대로
받아주고 감싸주며
스스로 성숙하여라.
불교가 제일 꺼리는 게 무명이다.
무명이란 햇빛의 밝고 어두움을 말하는 게 아니다.
마음의 어리석음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중에 제일 대표적인 것 중의 하나가 점치는 행위다.
자신도 모르는 자기 운명을
누가 점친단 말인가.
인간이 한 생 살아가는 데
대개 일어날 수 있는 일은
대부분이 비슷비슷하다.
그 비슷한 말 중에
지나고 나면 한두 가지는 비슷하게 맞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그것에 조차가면
지나간 일에 현혹당하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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