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내음의 보금자리/일주문(심검당)

** 일체유심조 (一切唯心造) **

향내음(蕙巖) 2008. 3. 14. 11:02


    사월 초파일에 등불 공양과 제등행렬을 하는 것은 불교의 종교의식으로 명맥을 이어오고 있지만 과거 전통사회에서는 다산(多産)과 풍요(豊饒) 를 기원하는 세시풍속(歲時風俗)의 하나였다고 한다. 불교는 어떤 종교보다 개인의 정신적인 수행과 마음의 다스림을 강조한다. 佛家의 가르침에는 공통적으로 마음속의 욕망과 헛된 욕심이 인간을 미망과 고해(苦海)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게 한다는 의식이 전제되어 있다. 이러한 불교사상이 집약적으로 표현된 교리가 바로 화엄경(華嚴經)에 나오는 "일체유심조" (一切唯心造)라는 구절이 아닌가 한다.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이 지어낸다" 는 말로 좋고 나쁨, 행복과 불행 등 모든 분별(分別) 과 경계(鏡戒) 는 자신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지 사물 그 자체의 속성이 아님을 뜻한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해석은 원효대사의 일화(逸話)와 관련 있다. 의상과 함께 당나라 유학길에 오른 원효가 어느 무덤 앞에서 잠이 들어 잠결에 목이 말라 물을 마셨다. 날이 밝아 깨어 보니 간밤에 달게 마신 그 물은 해골에 괸 썩은 물이었다. 이를 본 원효는 구역질을 했지만 그 후 대오각성(大悟覺醒) 해 유학길을 포기하고 돌아왔다는 이야기다. 원효의 깨달음이란 바로 깨끗함과 더러움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마음의 판단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교회 건축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인부들의 표정은 세 부류 정도로 나눌 수 있다고 한 성직자는 밝히고 있다. 우거지상을 한 인부는 “몸은 고달프고 일당은 적어 죽지 못해 일하고 있다” 고 말하고, 무표정한 얼굴의 인부는 “비록 푼돈이지만 집안의 식구들을 건사할 수 있으니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다” 는 태도 였으며, 마지막으로 환한 표정의 인부는 “일당을 받으며 내 손으로 하느님을 모시는 성전을 쌓고 있으니 만족스럽고 보람되다”고 말하였다. 이처럼 똑같은 조건에서 우리는 마음먹기에 따라 불행한 인부가 될 수도, 행복한 인부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긍정적인 마음이 갖는 능동적이고 마술적인 힘에 대해서는 과학적 검증도 있었다. 치료를 받는 환자의 기대와 믿음에 의해 위약(僞藥)도 실질적인 치료 효과를 거둔다는 플라시보 효과(placebo effect)와, 반대로 적절한 처방이나 약도 환자의 불신(不信) 때문에 효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노시보 효과(nocebo effect)가 그 대표적인 예다.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는“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을 반복하다 보면 습관이 되고, 습관에 의해 성품이 결정되고, 성품이 바뀌면 운명이 바뀐다”고 말했다. 오늘만큼은 佛家에서 마음의 세 가지 독 (三毒, 탐진치)이라고 일컫는 탐욕(貪), 노여움(瞋/화냄), 어리석음(우치/愚癡)을 조금 비워내고 그 자리에 우리의 운명을 바꿀 수도 있는, 밝고 긍정적인 비전으로 가득 채워진 희망의 연등을 달아보는 것은 어떨까? ♬~ 보석사... / 경음악 ............................................................................. 나의 생활 좌우명(座右銘)은 일체유심조 (一切唯心造) 이다... 비록 불자(佛子)는 아니지만... 이처럼 심오(深奧) 하고 자신을 관리하기에 좋은 성어(聖語)는 없는 듯하다. 아무쪼록~ 건강한 심신 수련을 위하여... 나 스스로의 마음을 평정(平靜)하여...무아(無我)의 경지에 이를 수 만 있다면...그것이~ 바로 고뇌와 번민에서 해탈(解脫)하여 천상(天上)의 세계에 입문할 수 있는 깨달음의 길에 가까워 질 수 있으리라~ 박영규(혜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