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눈동자

그대를 보게 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자기 눈에 보이는 대로 판단을 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채 꽃이 피기도 전에 줄기를 잘라 버리고 있습니다 술에 취한 눈을 비껴 뜨고서 아무리 좋은 포도주를 가져다 줘도 이미 취해 이성을 잃어버리고 푹 빠져 있습니다 아무 맛도 모르고 그저 입에 들어가는대로 그 맛에 길들여져서 그것만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그대여 나도 비틀거리고 있습니다 내 혀를 녹이는 그 맛을 이제는 버릴 수 없고 내 눈은 그것을 찾아 오늘도 사방을 두리번 거리며 헤매고 있습니다 내 마음에 너무 좋아 그 맛에 취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 그네들이 주는 한 잔을 아끼듯이 마시고 있습니다 내가 그대를 찢고 있습니다 술에 취해 흐릿한 눈을 뜨고서는 그대가 주고간 약속을 가슴에서는 벌써 찢어 버렸습니다 그래도 그대는 나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나는 비틀거리며 아직 취기가 그대로 남아 있지만 내 눈을 부시게 비추는 밝은 빛 가운데서 영혼에 있는 사랑을 보게하고 있습니다